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데이원 멤버들이 이 책에 남긴 기록 6개 중 최근 3개를 소개합니다.
최근 멤버들이 남긴 기록
그는 프라이버시를 철저하게 비켜갔고, 지나온 생애에 대해서는 헛되고 헛되도다, 세상만사 헛되도다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나 보기엔 노인인데도 구질구질해 보이지 않고 매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게 바로 그런 허무의 냄샌데, 바로 그런 점이 감찰부장 같은 사람한테 요시찰 인물로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까지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니?'란 말을 입에 자주 올리는 선배가 있다. 기저에는 멋을 추구하는 마음도 있는 거 같은데 그보다 강한 건 허무의 냄새다. 15살 차이가 나는데도 구질구질하지 않고 매력이 있다. 노인이 될수록 그는 더 멋있어질 거 같다. 매사에 허무를 풍기진 않지만 힘을 주지 않아도 될 때 힘을 주려는 주니어들에게 허무의 향은 힘이 된다. 요즘은 내용이 많으면 쭉정이만 가득해보인다. 본인이 말하는 양보다 더 많이 들어주고 결론은 짧고 굵게 인생의 덧없음으로 내려주는 사람을 따르게 된다.
2026년 9월 26일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는 것처럼 우리 집에도 별의별 사람이 다 있었다. 사람이 저마다 설명이 될 수 있는 부분으로만 돼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각박할까 싶기도 했다.
저 말을 무슨 의도로 했을까 싶은 상대가 있다. 맘 같아선 곧바로, 조금 양보해서 다음날 그 의도를 묻고 싶었다. 궁금증과 긁힘 사이에 쿨병이 파고들었다. 결국은 묻지 않았다. 물론 자주 만나는 사이도 아니고 가까운 사람은 더더욱 아니기에 그냥 넘어간 것도 있다. 한편으론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이 세상에 있다는 걸 인지했기 때문도 있다. 세상엔 별의별 사람이 다 있고 이해의 영역 밖에 있는 사람도 있다. 불의는 대응해야겠으나 체념이란 방법도 쓸모가 있는 거 같다.
2026년 9월 25일
우리가 대학에 들어간 지 일 년도 채 안 됐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일 년도 안 되는 동안에 그런 일들이 다 일어날 수가 있단 말인가. (...) 나는 나를 스쳐 간 세월의 부피와 경험의 부피가 맞지를 않아 용궁에서 대접받고 나온 어부와는 완전히 역으로 혼란스러워졌다.
무언가를 연마하고 학습할 때 일 년이란 기간은 꽤 아득하다. 아득함만 이겨내면 일 년이란 기간은 보답을 해왔다. 문득 문득 아직 이 정도밖에 안됐는데 일 년이나 지났나 싶을 정도로 잘해오고 있는지 의심도 든다. 역으로 내 삶은 대체로 경험의 부피가 세월의 부피보다 한참 크다. 어렸을 때 그러지 못한 삶에 대한 아쉬움을 채우려는 움직임인지는 확실치 않다. 매 연말이면 일 년 동안 이렇게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구나 놀란다. 그리고 다가올 해에 설렌다. 올해도 그럴 것이고 내년도 그럴 것이다.
2026년 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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