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적과 발산
신수정
데이원 멤버 8명이 이 책을 서재에 담았고, 20개의 구절을 남겼습니다.
멤버들이 밑줄 그은 문장
코치면 코치다. 초보 코치라는 말은 없다. 신입 사원이 아니라 사원이고, 초급 임원이 아니라 임원이며, 초보 대표가 아니라 대표다. 무대에 오른 순간부터는 프로다. ‘신입’이나 ‘초보’라는 이름 뒤에 숨을 필요는 없다.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회피일 수 있다. … 연륜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지만, 연륜이 부족할 때만 가질 수 있는 신선함과 에너지 역시 강력한 자산이다. 준비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시작은 오지 않는다. 시작하는 순간부터, 이미 당신은 그 이름으로 살아가게 된다.
겸손은 좋지만, 스스로에게 커다란 이름을 붙여 걸맞게 노력할 필요도 있다.
조연수
막상 실력이나 작품의 질은 초기에 큰 차이가 없었다. 자신의 작품을 최대한 확산시키기 위해 집요하고 끈질기게 다양한 곳을 접촉한 화가들이 행운을 만날 기회를 훨씬 더 많이 얻었다. 반면 한 자리에 머물며 조용히 기다린 화가들은 점점 행운에서 멀어져갔다.
부끄러워도 그냥 한 번 도전하고 약한 연결을 만들어라. 운이 나에게 붙는 구조로 전환하자.
조연수
실력이 있어도 발견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라마누잔은 실력이 부족해서 묻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가 보낸 편지 한 통이 인생을 바꾸는 접점이 되었다. … 나 역시 한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실력만 있으면 누군가 알아주겠지.’ 인맥을 만들라는 조언을 들을 때도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내향적인 편이기도 했고, 사람 만나는 데 시간을 쓰고 싶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자기PR의 시대는 인터넷과 SNS로 인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손 까딱으로 누구나 발견될 수 있는 세상이다. 연결은 광범위해짐에 따라 그 가치는 낮아졌지만, 반대로 그조차 시도하지 않았다면 도태된다. 또 발견의 기회는 많아졌지만, 지나친 공급과잉으로 남은 기회의 자리가 있는지조차 미지수다. 나도 이 시대의 흐름이 부담된다. 스터디에서 인사담당자님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제 마케팅이 아닌 기획, PM조차 인스타그램 포폴로 확인한다고 하였다. 인플루언서. 보여주기식 문화의 표본처럼 느껴져 거슬렸지만, 반대로 이 시대에 사람들이 자신을 발견하게 만드는 역량만큼 뛰어난 게 있나 싶다. 모든지 ‘하필‘이다. 어떤 것이든 실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필 그렇기에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나를 브랜딩해야 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한끝 차이의 다름과 묵묵히 지켜온 나다움만큼은 나를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아직 남아있다는 점이다.
조연수
토니 로빈스나 제프 베이조스처럼, 이미 잘하고 있는 영역에 새로운 요소를 융합해 자신의 역량이나 비즈니스를 한 단계 확장하는 데 즉각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서 멈추지 말고, 그 배움을 기존의 경험과 결합해 자신의 무기를 더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배움을 그대로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몇 배, 몇백 배로 레버리지해 자신의 가치를 확장해보자.
배움을 대하는 태도 : 초점–아웃풋–레버리지 1. 초점을 가지고 배우기 2. 배우는 동시에 아웃풋 만들기 3. 배움을 더 크게 레버리지하기*
조연수
어떤 직원의 연봉이 5천만 원이라고 가정해봅시다. 그리고 대표님 회사의 좋은 문화, 대표님이 주는 신뢰와 존중, 관계의 가치를 2천만 원이라고 합시다. 그러면 이 직원이 체감하는 총 보상은 7천만 원이 됩니다. 이때 누군가 그 직원에게 6천만 원에 이직 제안을 한다면 그는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8천만 원이라면 어떨까요? 아마 움직일 것입니다. 회사의 문화가 좋아도 대표님이 아무리 신뢰를 줘도 그 가치 이상의 제안을 받으면 이동합니다. 그런데 만약 대표님이 화가 나서 그 ‘문화와 신뢰, 관계의 가치’를 없애기로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제 그는 5천만 원을 조금만 넘는 제안에도, 아니 더 적은 연봉에도 흔들릴 것입니다.
분위기로 뭉뚱그려버리는 가치가 매우 크다고 느낀다. 아무리 힘들어도 분위기가 좋고 사람이 좋으면 버텨진다. 당연히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실제 연봉보다도 ‘정서적 연봉‘이 압도하는 조직에 녹아들고 싶다.
조연수
넬슨 만델라는 27년간 수감 생활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간수 세 명을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행동에 놀라워하며 이유를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젊었을 때 나는 성격이 급하고 거칠었습니다. 옥중에서 감정을 억제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이 세 분 덕분에 나는 고통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법을 터득했고, 나와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객관적인 옳고 그름이 있을까. 타인을 감히 평가하기 어려운 건, 그가 보여준 모습은 나와의 조합에서 발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잊지 않으려해도, 에고가 점점 굳어짐에 따라 단정짓는 습관이 생긴다. 나는 나의 세계만 살아갈 뿐, 나에게 부정을 불러일으킴이 중요한 것도 맞다. 하지만 그 불행이 끝까지 불행일지도 알 수 없다. 내 어떤 특성이 그의 어떤 모습과 부딪혀 그을림을 만들었을지 생각하다보면, 끝끝내 부정은 전복된다. 아래로 끌어내리는 듯한 움직임이 실은 더 큰 반동을 만들어낼 수 있다.
조연수
필요할 때는 거절하고, 단호하게 선을 긋고, 때로는 뻔뻔해 보일 만큼 당당함을 유지해야 한다. 불합리한 요구에는 양보하지 않고, 가스라이팅에는 즉각 대응하며, 불필요한 감정 소모는 스스로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 먼저 베풀되 필요할 때는 냉정해지고, 단호하게 대응할 줄도 알아야 한다. 협상 실험에서도 서로에게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드는 방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이라고 한다.
<이타적 인간의 출현>의 반복 상호성 이론에 따르면, 여러 번의 게임이 반복된다는 전제가 이타적 행동을 유발한다. 반복되는 게임에서는 상대의 미래 보복 가능성을 고려하게 되므로 Tit-for-tat 전략이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그 결과 상호 협력이 내쉬균형이 되어 이타적 행동이 유지된다. (대부분) 합리적 인간이 모인 이 사회 내 생존 전략으로서 이타성이 존재한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또 이타성이 발휘되지 말아야 할 상황에서도 계속 발휘된다면, 그것은 선함이 아닌 비합리성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만들어낸 경계는 이타성의 반대가 아니다. Tit-for-tat은 상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 있다. 즉, 이타성은 무한한 베풂보단 ‘신뢰 하에‘ 지속 가능한 협력이라 생각한다.
조연수
사실 베풂을 받은 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어려울 때는 간절하지만 그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기억은 빠르게 희미해진다. 그들이 특히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대체로 인간이 그렇다. 베풂을 오래 기억하고 갚으려 하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다. 반면 상처는 크게 기억한다. 자녀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부모가 잘해준 수많은 일들은 잘 떠올리지 못하지만, 못해준 몇 가지는 대개 또렷하게 기억한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 베푼 것은 강물에 흘려보내라. 그러나 받은 은혜는 돌에 새겨라.
기브앤테이커보다는 기버. 준 만큼 받으려면 준 것을 기억해야 하니까. 나야말로 무얼 그렇게 잘했을라나 생각하고, 아주 조금만 의연해지면 세상 사는 게 편하다.
조연수
공을 세웠을 때는 함께한 사람들을 기억하라. 그들의 기여를 조직에 분명히 알리고, 성과를 함께 나누라.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말라. 혼자 잘난 사람을 굳이 좋아할 이유는 없다. 오래가는 사람은 혼자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이기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본인이 낸 아이디어와 기여를 지나치게 강조하던 분이 떠올랐다. 프로젝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잘 해냈다는 것을 어필하려는 것이었겠지만(실제로 기여한 바가 적진 않았다), 최종 아이디어나 결과물이 만들어지기까지 다함께 의견을 내고 협업한 과정이 생략된 듯한 인상을 받았다. 나도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이다. 확실히 채찍보다는 당근으로 동력을 얻어서, 내가 잘해낸 부분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일상 속에선 그런 내 모습을 귀엽게 봐주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젠 스스로도 유치하다고 느껴진다. 인정받으려는 습관은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될만한 말버릇에서 비롯된다. 책임을 지려 꺼낸 말이 아니면 “제가 한”의 수식어는 불필요할 때가 많다. 진정한 어른은 묵묵히 백업하는 사람들의 공을 알아준다. 동기를 잃지 않게 언급해주고 이끌어준다. 난 욕심이 많고 눈치는 부족해서, 주변을 살피며 기여를 캐치해줄 세심한 안목은 결여됐다. 내 것에 급급해 쉬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도 보이는 누군가의 기여라면 진심으로 나서서 말해주고 싶다. 날이 지날수록 내가 얼마나 불완전한지 몸소 깨닫는다. 혼자 일을 해야만 팀원의 중요성을 비로소 느낀다. (또한 이마저 오만했음을 방증한다) 당연해보이는 성과도, 보완점을 채워주는 누군가가 있었기에 나올 수 있었다. 베풀어야 한다, 그리고 도움이 되어준 사람들께 감사함을 표하자
조연수
그러므로 부를 쌓으려면 당연히 돈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세상을 투자가와 사업가의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꼭 돈의 영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뒤 창업해 성공한 한 대표는 회사에 다닐 때 사업가의 관점으로 일했다고 했다. 몇 년 후 창업할 결심을 하고 회사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들이 싫어하는 어려운 일, 복잡한 일, 실력을 쌓을 수 있는 일에 오히려 즐겁게 도전하게 되었다고 했다.
의미없는 일이 주어져도 불필요한 프로세스를 자동화해볼 수 있고, 복잡한 일이 주어져도 이젠 AI로 가능한 HOW들을 도출할 수 있다. 거시적인 관점으로 주체성 있게 세상과 일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조연수
매사에 열심히 하고 능력도 있는데 정작 실속을 챙기지 못하다 보니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 왜 내게는 힘든 프로젝트만 맡겨질까? 왜 주변에는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만 모일까? 왜 나는 열심히 하는데도 돈이 되는 일과는 인연이 없을까? 나의 관찰에 따르면 물론 운이 나쁜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그것을 부르는’ 경우가 더 많다.
몇년 전 적당히 머리가 크기 시작했을 적 내게 돈은 그저 수단이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돈을 많이 버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적어도 나는 돈이 목적보다 앞서지 말자는 것이 목표였다. 내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 늘 누군가를 도왔고 기꺼이 안았고 그래서 후회가 없는 삶이길 바랐다. 나의 정체성은 돈을 좇지 않는 비범함을 지니길 소망했다. 역설적이게도 이 생각은 뛰어난 주류에 편승하고 싶어 아등바등일 때 강해졌다. 난 욕심이 많다. 노력하여도 그러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또 크게 시달리며 살아온 적이 없는 행운과 겹치며 낭만스런 방자함을 만들었다. 지금은 이에 대한 반작용인지, 실속을 챙겨오고 챙기려 하는 모습이 현명한 것으로 느껴진다. 이 생각이 또 얼마나 갈진 모르겠으나, 적어도 지금 나에게 돈은 속물스러움이 묻어나는 꼬름한 무언가가 아니다. 돈으로 설명되지 않는 가치도 물론 거대하지만, 돈으로 인정받는 무언가 역시 없지 않음을 인정한다.
조연수
둘째, 가치 창출의 구조는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용을 줄였다고 해서 그것 자체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가치 창출이란 고객에게 새로운 효용을 제공하거나 시장을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AI 협업 툴을 도입했다고 해서 고객 가치가 자동으로 커지거나 시장이 넓어지지는 않는다.
전사적 AI 전환에도 큰 변화가 없는 이유 1. 경쟁사들도 비슷한 수준으로 효율을 끌어올려, 차별화에 실패했다. 2. 가치 창출의 구조가 그대로다. AI로 고객에게 새로운 효용을 제공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3. 성과의 정의와 측정이 여전히 아웃풋과 효율 중심이다. 쓸데없는 자료와 콘텐츠 생산에 AI가 활용된다. 4. 비즈니스 모델이 그대로다. 5. 수직적인 조직문화나 리더십이 AI의 생산성을 압도한다.
조연수
이 지점에서 착하고 성실한 리더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이 있다. '좋은 의도와 태도로 실력과 성품을 묵묵히 쌓다 보면 언젠가 알아주겠지'라는 믿음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축적만으로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확률이 낮다. 착함을 버리고 정치를 하라는 말이 아니다. 착함을 유지하되 환경을 읽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표현하라는 것이다. ... 관계 중심 리더십은 현실을 모르는 순진함이 아니라 장기 성과를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이고, 성과 중심 리더십은 사람을 갈아 넣는 압박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성과를 내는 설계다. 그리고 이 둘을 연결하는 접착제가 바로 환경을 읽는 눈, 행동, 그리고 표현이다.
"비둘기처럼 순결하되, 뱀처럼 지혜로워라." 모순이 실은 진리이다. 관계 중심적이면서 성과 지향적이어야 하고, 축적하면서 발산해야 하며, 조직의 목표와 개인의 목표를 함께 가져가야 한다. 하나만 두드러진다면 이에 강점이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다른 축을 보완해야 함을 뜻한다. 보완이 어렵다면 다른 강점을 지닌 사람을 곁에 두거나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법도 좋다. 일과 사람 모두 그라데이션으로 이뤄져있다. 끊임없이 행동하고, 피드백하고, 기록하고, 보완하면서 나와 상황에 맞는 균형점을 찾아나가면 그만이다
조연수
실력이 실제로 향상되려면 조건이 있다. 첫째,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의도적인 훈련을 해야 한다. 물론 절대적인 시간은 필요하지만 무조건 시간을 쓴다고 실력이 느는 것은 아니다. 한계를 살짝 넘어서는 과제를 부여하고 끊임없이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교정하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실력의 층위가 바뀐다. 둘째, 기존에 해오던 방식에 의문을 가져야 한다. 다른 관점으로 보고, 다른 방식의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의문 없이 반복하는 일은 노동일 뿐 성장이 아니다. 성장은 안정된 지대를 벗어나 약간의 불안과 적절한 스트레스가 공존하는 지대에서 일어난다. 평온하기만 하다면 이미 정체되어 있다는 증거다.
실력 향상의 조건 - 한계를 살짝 넘는 목표 설정과 의도적인 훈련 (피드백과 반영) - 기존 방식과 다른 변화를 시도 늦었다는 생각이 빠르게 치고 올라갈 수 있는 마중물이 되기도 한다. n년차도 뒤집을 수 있는 이 성장하기 좋은 시대에, 성장 열망이 식지 않을 시스템만 잘 만들어내자
조연수
둘째, 파킨슨의 법칙 때문이다. 행정학자 노스코트 파킨슨은 『파킨슨의 법칙』에서 “일은 그것을 처리하는 데 쓸 수 있는 시간만큼 늘어난다”는 통찰을 남겼다. 마감을 한 달로 잡으면 한 달이 걸리고, 일주일로 잡으면 일주일이 걸린다는 뜻이다. 실제로 실행에 필요한 시간이 한 시간이라면, 한 달의 마감이든 한 주의 마감이든 본질적인 차이는 거의 없다. 마감을 당긴다고 해서 결과가 눈에 띄게 나빠지지도 않는다. 회사를 다녀본 사람은 아마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데드라인 직전에 폭발적이고 소진적이게 일을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정도 손아귀에 잡히는 양의 일이라면 좋은 퀄리티가 나오지만, 점점 그게 어려움을 느낀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시간이 길게 주어진 일에서 더 자주 나타난다. 시간이 많다는 안주에 미루게 된다면, 앞당겨 시작하여 길게 투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자. 그게 되지 않더라도, 적어도 일찍 해치울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음의 찜찜함을 최소화할 방법을 알고 있음에도 나에겐 가장 어렵다.
조연수
그러므로 당신의 실력이 온전히 당신만의 것이 아님을, 환경과의 조화가 실력의 완성임을 잊지 마시라. … 여기서 말하는 시스템이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의 의지, 역량, 상황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고도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반복 실행되도록 설계된 규칙, 역할 프로세스, 도구의 결합체를 말한다.
책에서 다룬 시스템의 두 축 - 개인의 시스템화 : 개인의 의지력과 상황에 기대지 않고 시스템으로서 행동할 수 있게 하는 것. 80 대 20의 원칙 속 20을 개발하기 위한 습관을 자유의지가 아닌 시스템으로 만들어가기. ex, 강제화된 의지를 위한 돈의 투자 (클래스나 운동), 나의 경우엔 미루고 싶지만 해야 하는 리스트를 따로 두어 투두에서 관리 - 조직의 시스템화 : 1. 개인의 조직 내 성과 = 인적 자본 + 사회적 자본 + 조직 자본 2. 조직의 성과 /= 개인의 성과의 합 3. 인력 선발의 3조건 : 직무 능력, 팀 적합도, 기업 적합도 뛰어난 성과를 보인 개인에게, 어떤 자본이 극대화되었기에 그 결과가 나온지는 단정할 수 없다. 반대로 부진한 개인이 유독 그에게 부진할 수 없는 환경(시스템, 상황) 속에 놓여진 것일 수 있다. 종합하면 개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최상의 공동 목표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여러 차원의 인센티브나 역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조연수
“캐리커처를 그리는 동안 짧지만 깊은 소통을 해요. 고객들은 대개 젊은이나 외국인이에요. 요즘 어느 젊은 사람들이 60대 시니어를 찾겠어요. 꼰대라고 다 피하지. 그런데 저는 10대들과도 소통하잖아요. 그림을 받아 들고 고마워하면 그게 또 기쁘고요. 얼마 전에 한 미국인과 이야기하다 보니 내 미국 대학원 30년 후배더라고요. 반가워서 하이파이브도 했죠."
오랜만에 러닝 후 샤워를 하니 기분이 상쾌했다. 이 마음을 이어 오늘 기록엔 감사함을 적고 싶다 생각했는데, 마침 또 이런 문장을 보니 반갑다. 요즘이 내 인생의 정체라고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지금 또 기분이 좋았다가도 내일 아침 눈 뜨자마자 막막함이 밀려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지금의 상쾌함이 더 애틋하다. 요즘 내 사람들과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행복하다. 하필 책과 친해져 스스로 평화를 만들어내는 법을 훈련하게 된 점도 좋다. 달려오기만 하던 나였는데 이제와서야 차안대를 걷어낼 수 있게 되었다. 또, 이러한 자기 점검에도 여유가 한 방울 들어간다는 게 마음에 든다. 내가 다운될 때는 늘 내 편이라고 말해주는 가족과 사람들이 있어 감사하다. 나는 복받은 사람이라고 얘기하면 너가 좋은 사람이라 그렇다며 말해주는 누군가마저 있어왔다. 나쁜 일에도 배울 것을 찾자고 다짐한다. 그러면 나쁜 일도 나쁜 일이 아니게 될터이니. 생각하다 보니 세상에 나쁜 일은 없는 것 같다.(안일한 마음일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지금은 정체가 아닌 확장의 시기이다. 모든 것에 감사하자
조연수
그러나 이를 실제로 정리하고 써보고 토론하고 피드백 받는 과정에 참여하면 훨씬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든다. 하루를 온전히 써야 할 수도 있다. 겉으로는 낭비처럼 보인다. 하지만 변화는 그 지점에서 일어난다. … 시행착오가 생긴다. 그렇지만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진짜로 남지 않는다. 이해는 되지만, 축적은 되지 않는다. 축적이 없으면 발산도 없다. 진보도 크지 않다.
확실히 AI가 삶에 녹아들면서 가장 많이 떨어진 감각이다. 고등학생 때도, 아니 대학교 2학년까지만 해도 굳이굳이 정독하고 분석하고 찾아보곤 했는데. 뇌가 깨어질듯 고민하고 손으로 연결점을 찾아가던 마지막 시점이 작년인 것 같다. 자연어로 편하게 질의해 얻을 수 있는 정답이, 과거에는 어떤 책을 찾아야 하는지 생각하고, 기존의 어떤 지식들을 연결해야 답을 얻을 수 있는지 고민해야 나오던 것들이다. 세상이 많이 발전해 구글링을 배우던 때조차도 적어도 인터넷 정보들을 연결하는 훈련이라도 했다. 이젠 생각을 거치지 않아도 답이 저절로 나온다. 이해가 안된다 하면 밥을 떠 내 목구멍까지 넣어준다. 그래서 이젠 뇌도 끈기가 떨어진 것인지, 비효율을 함부로 판단한다. AI로 빠른 이해와 빠른 포기가 동시에 가능해졌다. 점점 멍청해질까봐 무섭다. 최근의 축적은 정말 제대로 이뤄지고 있었던 것일까? 효율적인 시간이 효과적인 시간은 아니듯, 깨진 항아리에 물만 붓고 있던 것은 아닐지
조연수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한 자리에서 만난 분은 블로그에 글을 써서 올리기로 결심했지만 결국 두세 번 쓰고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올리면 창피하지 않을까, 누가 부족하다고 하지 않을까 고민하며 고치고 고치느라 한편 올리는 데 두세 시간이 걸리다 보니 지쳐서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나는 초기에 3년 정도는 그냥 매주 한두 번, 퇴근길에 두세 줄씩만 올렸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처럼 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을 완전히 소화해야 서평을 적을 수 있다는 강박이 있었고, 그렇다고 좋은 책들을 대충 훑어보며 흘려보내긴 아까웠고, 그래서 더 책 읽는 걸 미뤄왔다. 데이원을 하며 짧게라도 나만의 언어를 고르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게 모아진 코멘트는 정독 후 한번에 떠오르기는 어려운 점들을 이을 수 있게 해줬다. 공들여 들인 시간이 나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짧은 기록 때문에 책 읽는 게 더 좋아진다. 많이 고치지 않아도, AI 도움을 받지 않아도, 글을 쓸 줄 알아가는 게 참 좋다. 아날로그의 감각을 더 일깨우고 싶다.
조연수
첫째, 피드백을 받으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쓴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둘째, 피드백을 주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신뢰하지 않는 리더나 코치의 말은 조언이 아니라 잔소리나 간섭으로 들린다. 셋째, 피드백을 주는 사람에게 실력이 있어야 한다. 상대보다 반드시 뛰어나야 할 필요는 없지만(타이거 우즈의 코치가 우즈보다 골프를 잘 치는 것은 아니듯), 구체적이고 제대로 된 조언을 할 만큼의 이해와 경험이 필요하다. 넷째, 전달 방식이 적절해야 한다. 너무 강하면 상처만 남기고 너무 약하면 홀려 듣게 된다.
점점 자유가 커질수록 나의 굴레에 갇히기 쉬움을 느낀다. 내보내지 않으면 피드백은 오지 않고, 그렇게 새 자극이 들어오지 않아 또 내보낼 게 없다. 최대한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 삼아’ 시작해도, 그 작은 결과물마저 애정이 생기는 것일까. 쓴 피드백은 뱉어버리고 싶다. 나와 내 결과를 동일시하게 된다. 요즈음 위축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유튜브를 보다보면 그닥 좋지 않은 퀄리티의 영상물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과 달리 이런 이들을 비웃고 싶지 않다. 물어뜯기만 하는 인터넷 하이에나 앞에 당당히 도전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들은 비웃음 당할 용기마저 갖췄다. (혹자는 메타인지가 떨어진다 하겠지만) 나에겐 결국 누른 업로드 버튼이 대단하다. 나는 피드백에 열려있는가? 괜히 있을 혹평을 예상하며 숨어버리진 않는가? 언제 어떤 피드백이든 환영할 마인드를 갖추자
조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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