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그은 책

나는 왜 산티아고로 도망갔을까

데이원 멤버 4이 이 책을 서재에 담았고, 10의 구절을 남겼습니다.

멤버들이 밑줄 그은 문장

  • 나는 오래전 보았던 유튜브 영상에서 많은 순례자가 순례를 마친 후 피니스테레에서 옷이나 신발, 소지품을 태우면서 다시 태어난다는 세레머니를 하는 것을 감명 깊게 보았다. 나 역시 그런 과정을 통해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있었던 상처나, 삶에서의 아픔을 청산하고 싶었다.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의식이었기에 나에게 이 라이터의 의미는 작지 않다.

    하나의 스텝이 끝이 났다면 그 기억은 그곳에 묻어두는 편이다. 앞으로의 삶을 살아내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그곳에 있어야지만 온전히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너무 자주 상기해서 그 기억을 희석시키기보다 삶이 힘들 때 가끔 갤러리 속 여행 사진을 꺼내보는 것처럼.

    공경민

  • 나는 이은영 순례자를 통해 아버지의 마 음을 투영했다. 이은영 순례자가 힘이 닿는 한 사회에 환원하려 했던 의지와 향기를 기억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 향기를 기억하는 것이다.

    언젠간 내가 이 사회에 받은만큼 아니 그 이상을 돌려주는 순간이 오길 바란다. 선한 향기를 남겼던 이들의 뒤를 따르며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다.

    공경민

  • 나는, 순례자란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끊임없이 내면과 마주하며 걷는 한 이 길이 끝나더라도 세상 어디에서나 순례자가 될 자신이 생겼다.

    난 아직도 내 정체성을 모른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싫어하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분명 그 많은 시간들 속에서 생각해볼 수 있었을텐데 왜 아직 표류중일까. 올해는 스스로를 찾을 수 있는 시간들로 한가득 채워가야겠다.

    공경민

  • 이 순례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순례길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길은 절대 아니었다. 당사자가 긴 거리를 직접 걸어보기 전에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한다.

    순례길 뿐 아니라 인생의 모든 길 또한 그렇지 않을까. 내가 직접 걸어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것이 존재하겠지. 내가 기대했건 그렇지 않건 무수한 일들을 마주하게 되겠지. 그럴수록 난 더더욱 의연함을 놓지 않으려 노력해야겠고.

    공경민

  • 돌아보니 참 많은 생각을 했고, 많은 것을 내려놓았고 스스로를 많이 비워냈다.

    대장정을 걸을 때에도 느꼈던 감정이다. 그 긴 시간, 나는 비우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걱정과 욕심 때문에 무거웠던 가방 속 짐들을 하루하루 비워냈던 물질적인 측면뿐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조바심이나 걱정들도 꽤나 비워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젠 그때와 같은 맘 편한 여유가 많지 않을 텐데, 또다시 용기 내서 그때와 같은 길을 걸어낼 수 있을까? 인생의 중요한 일들은 시간이 남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 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기에, 시간을 내어서 고생길을 택해봐야겠다. 너무 늦지 않게.

    공경민

  • 걸어가는 길에 'Ultreia'라고 쓰인 돌을 보았다. 로그로뇨의 성당에서 배운 노래의 제목과 같다. 나는 '한계를 넘어 전진하라' 라는 뜻을 곱씹으며 걱정과 서러움을 내려놓았다.

    바뀔 여지가 있다는 것, 더 나아갈 길이 있다는 것, 또 살아낼 수 있는 내일이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감사하다. 아무리 뒤져보고 공부해 봐도 완벽한 결과를 만들 수 없었던 며칠이었지만 미완의 존재는 더 채울 기회가 있다는 것이니 더더욱 전진해 볼 수밖에.

    공경민

  • 용기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니라, 매일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누구와도 삶을 비교할 필요가 없다. 자신 앞에 놓인 것들을 마주하기 위해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낸다면 말이다.

    최근 과제로 에세이를 쓰면서도 생각했던 내용이다. 내가 끊임없이 불행의 늪에 한 발 담그고 있는 것은 남의 하이라이트와 나의 비하인드를 비교하는 것에 기인한다는 사실이다. 결국은 내 일상과 호흡들은 모두 나의 것인데 그럴 필요가 있을까. 내 앞에 놓인 것들에 온전히 집중해서 고독의 수평선을 항상 유지하도록 해야겠다.

    공경민

  • 순례길은 무언가를 얻으러 와서 결국은 비우고 가는 길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굳이 이방인이 된 이 길에서 나는 무엇을 비우고 또 발견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인생은 잠시 쉬었다 가는 것이라는 말을 늘상 하시던 외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어릴 땐 그저 가벼운 말로 흘려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더 진하게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숨 막히는 경쟁 속에서 무언가를 쟁취해 내는 순간들이 나를 벅차게 만들기도 하고, 천성에도 크게 벗어나지 않기에 이 경쟁사회가 아주 밉거나 싫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아사리판에서 잠시 떨어져 바라볼 때면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길 끝에서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그렇기에 길 속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얻어 가야 하는 것이 삶이라 한다면 내가 쫓아야 할 궁극은 무엇일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공경민

  • 길을 걷는 동안 내 마음은 견고했고 무릎이 아파도 굴하지 않고 한계를 이겨내며 걸었다.

    전역하고 걸었던 국토대장정은 인생에 있어서 버티기의 초석을 깔아줬다. 발바닥이 다 터지고 물집으로 뒤덮여도 꾸역꾸역 참아내며 한걸음 한걸음 내딛뎠던 그 순간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고. 새벽 3시에 일어나 김밥을 먹고 여명을 향해 내딛던 그 순간들이, 저 멀리 반짝이는 꿈을 쫓아가는 지금의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을 주고 있는지. 수풀 속에 기어 들어가 포도당 알약을 먹고, 또 길가 시멘트 바닥에 퍼져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던 그 모든 순간들을 기억한다. 그 추억으로 오늘을 살아냈고, 또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또다시 찾아온 월요일 앞에서 그때의 빛깔을 다시 상기시켜본다.

    공경민

  • 듣고 있던 스위스 친구가 "세라비"라고 한마디를 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물으니, '이것이 인생이다'라고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냥 세라비라고 말하며 받아들이라는 조언이었다.

    그저 낙관을 동경하는 비관론자로 살아온 세월이 길지만, 올해를 기점으로 낙관에 가까이 가보려 한다. 어떤 것에 대해서든 도전이라는 자체를 두려워하고 회피하려 했지만 그럴수록 내 세상은 좁아지는 것을 느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들을 좀 더 다양한 빛깔들로 수놓고 싶다. 그러니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세라비"를 생각해 보자.

    공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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