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목적인 나의 인생 행복하려면 자율성이다 그 자율성 그자유는 외부에서가 아니라 나의 마음에서 온다 나로부터 내가 자유로워야한다
2026년 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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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적 추론의 결과가 항상 정상이냐 비정상이냐 결정짓는 기준은 어떤 외부적인 사실이 아니다
김주환 교수님이 늘 강조하시는 나룻배 이야기가 있다. 잔잔한 호수 위에서 내가 배를 타고 있는데, 뒤에서 무언가 쿵 하고 들이받는다. 순간 화가 치민다. "누구야!" 그런데 돌아보니 그건 아무도 타지 않은 빈 배였다. 그러자 나의 화도 가라앉는다.
과연 그 화는 무엇이었을까. 외부 요인 때문에 생겼다고 생각했던 화는, 사실 내 안에서 스토리텔링으로 만들어진 화였다.
나는 이 이야기를 외부 요인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는 뜻으로 이해했다. 어떤 외부 요인이 닥치든 결국 내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지만 이번에 방콕을 다녀오고 나서, 그 이해가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여행지에 가면 현지 사람에게 말을 걸고 친해지려고 노력한다. 방콕에서도 한 여자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친해졌다. 한국 여대생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자기는 사실 레이디보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남자로 느껴졌다. 그런데 그 친구의 사정과 깊은 이야기를 듣고 나니, 다시 여자로 느껴졌다.
처음 그 친구를 봤을 때, 그리고 레이디보이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눈 뒤 다시 여자로 보였던 건, 내가 "여자로 봐야지" 하고 마음을 고쳐먹었기 때문일까? 아니다. 내가 이미 여자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여자로 보인 것이다.
외부 요인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고치는 게 아니었다. 우리는 외부를 바라보는 순간부터 이미 수많은 스토리텔링을 돌리고 있다. 그야말로 본질은 내 마음에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외부는 내 안의 스토리텔링이 만들어 낸 허상이다.
이걸 깨닫고 머리를 돌로 맞은 기분이었다. 어떻게든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들이, 사실은 대전제부터 틀려 있었다. 나는 이미 외부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고쳤어야 할 것은 외부를 바라보는 스토리텔링 자체였는데, 나는 그 스토리텔링은 굳혀 둔 채로, 굳어진 결과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만 했던 것이다.
외부의 영향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다.
찾아보니 원효대사의 해골물 이야기도 나와 비슷한 깨달음이었다. 단순히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게 아니라,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이고, 그 바라봄이 곧 마음이다. 그러므로 본질은 마음에 있다.
원효대사님은 해골물을 통해 깨달았지만 나는 레이디보이를 통해 깨달았다 내가 가진 편견도 많이 사라졌다 이 에피소드 뿐만아니라 요번 여행을 통행 시야가 확 트였다 정말 배운게 많은 여행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