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그은 책

바깥은 여름

김애란

데이원 멤버 17이 이 책을 서재에 담았고, 17의 구절을 남겼습니다.

멤버들이 밑줄 그은 문장

  • 게다가 옆자리의 학생들이 몇십분째 누군가를 맹렬히 헐뜯는지라 나는 그만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걔가? 그 교수랑? 어머, 어떻게 그래? 타인이 아닌 자신의 도덕성에 상처 입은 얼굴로 놀란 듯 즐거워하고 있었다. 나도 잘 아는 즐거움이었다.

    .. 나도 어쩌면 최근에 자주 즐겼던 즐거움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했던 나의 도덕성을 돌이켜보며 짧게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고 자야겠다.

    백채린

  • 그리고 그렇게 사진 속에 붙박인 무지. 영원한 무지는 내 가슴 어디께를 찌르르 건드리고는 한다. 우리가 뭘 모른다 할 때 대체로 그건 뭘 잃어버리게 될지 모른다는 뜻과 같으니까. 무언가 주자마자 앗아가는 건 사진이 늘 해온 일 중 하나이니까.

    사진은 늘 과거의 시점이기에 추억을 주고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앗아간다.

    백채린

  • 몇몇 거대한 영들이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흘러가는 게 보인다. 아니 흐르는 게 아니라 빨린다고 해야 할까. 흐르고 흐르다 어느 기다란 금속관 안으로 순식간에 흡수돼 회오리쳐 사라진다. 나는 있는 힘껏 반대로 몸을 튼다. 그렇지만 자석처럼 나를 강하게 끌어들이는 힘을 피할 수 없다.

    오늘 병동 선생님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어느정도 예견하는걸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왔다. 아무리 갑작스러운 순간으로 죽게되더라도, 며칠 전에는 그동안 자주 못봤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리는걸 한 번씩 본 적이 있다. 다들 직감적으로 느낌이 오는걸지도 모른다.

    백채린

  • 중앙은 멸종 위기에 처한 언어를 보호하고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이 단지를 세웠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리고 그건 중앙에서 내심 바라는 바였다. 그들은 잊어버리기 위해 애도했다. 멸시하기 위해 치켜세웠고, 죽여버리기 위해 기념했다.

    멸시하기 위해 치켜세웠다는 구절이 유독 와닿았다. 조금이라도 유명해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끝없이 치켜세워주다가 한 발 삐끗하면 바닥을 모른채 추락하는게 요즘 자주보는 현상인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은 처음부터 그걸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백채린

  • 도화는 노량진이라는 낱말을 발음한 순간 목울대에 묵직한 게 올라오는 걸 느꼈다. 단어 하나에 여러 기억이 섞여 뒤엉 키는 걸 알았다.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안에서 여러 번의 봄과 겨울을 난, 한 번도 제철을 만끽하지 못하고 시들어간 연인의 젊은 얼굴이 떠올랐다.

    어떠한 계절과 장소에 추억을 저장하는 것은 만인공통인가보다. 유난히 기억에 남는 동네는 주로 다시 오지 않을 추억을 저장한 곳들이지 않을까 싶다.

    백채린

  • 직업상 비 올 확률이라든가 바람의 세기, 적설량에 민감한 도화에겐 요즘 들어 제철이 다 사라진 것처럼 보였기때문이다. 당장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오늘만해도 그랬다.

    도화와는 반대로 날씨에 구애받지않고 사시사철 반팔 근무복만 입고 일을 해도 제철이 사라진 것 처럼 느껴지는건 매한가지이다. 출퇴근길에 보이는 벚꽃과 목련들을 보며 봄임을 어렴풋이 가늠하지만 계절에 맞게 풍경 구경을 하러 간지는 꽤 된 것 같다. 점점 감흥이 없어져서 그런거같긴한데.. 조만간 굳이 Day를 실천해서 낭만을 좀 찾아봐야겠다.

    백채린

  • 머릿속에 난데없이 '용서'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찬성이 선 데가 길이 아닌 살얼음판이라도 되는 양 어디선가 쩍쩍 금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중한 존재인걸 알지만 옆에 계속 있다보니 소홀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수순이다. 그래서 이를 잃었을때 떠오르는 가장 큰 감정이 ’용서‘가 되는 것 같다. 떠난 이에게 용서를 빌어봤자 평생 대답을 들을 수 없을테니 후회할 일을 최대한 적게 만들어봐야겠다.

    백채린

  • 돈을 벌기 위해선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과 그 인내가 무언가를 꼭 보상해주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돈을 벌 때는 정말 많은 인내심과 나만 아는 배려들이 필요하다. 누가 알아주길 바래서는 안될만큼 사소한 배려들이지만, 가끔가다 그걸 알아채고 건네받는 감사의 한 마디들이 보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백채린

  • 아내는 한 손으로 영우가 직접 쓴, 아니 쓰다만 이름을 어루만졌다. 순간 어디선가 영우가 다다다다 뛰어와 두 팔로 내 다리를 감싸안을 것 같았다. '토닥토닥' 그런 건 어디서 배웠는지, 제 엄마 등을 말없이 두드려줄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그 단순한 사실이 가슴을 아프게 후벼팠다. 나는 결국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부엌 바닥으로 굵은 눈물방울이 툭 흘러내렸다.

    상실이라는 것은 영원히 잃어버림을 뜻하는 말이라 언제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처음 겪었던 그 나이에도, 그때로부터 꽤나 성장한 지금도 여전히 어렵다. 내가 겪는 것도 힘들지만, 상실을 앞둔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도 여전히 난제다. 감히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걸 알아서 그저 모른척 커튼을 쳐주고 그 감정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을 주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가 됐다.

    백채린

  • 세상 모든 가장이 겪는 불안 중 그나마 나은 불안을 택한거라 믿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건 얼마간 사실이었다. 적어도 내겐 뭔가 선택할 자유라도 있었으니까.

    서울 한복판에서 집을 산 후에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한다고 생각하니 아직 집도 없는데 벌써 숨막히는 기분이다. 내 삶의 가장은 나라서.. 집없이 거처를 옮겨다니며 얻을 불안과 집을 장만한 후 얻을 스트레스 중 언젠간 선택을 해야될거같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냥 현재를 자유롭게 살며 즐기고 싶다.

    백채린

  • 어쩌만 그 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게 뛰어든게 아니라 '삶'이 '삶'에게 뛰어든 것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 당신을 보낸 뒤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

    편지를 읽은 후 남편의 다급했던 순간이 죽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생명(삶)을 향한 사랑이었다는걸 깨닫는 장면을 묘사한 문장이다. 복잡한 감정을 풀어내는 단어 선택 그 자체가 그냥 마음에 들었다.

    김동욱

  • 내일 엄마랑 그 할아버지 장례식에 가보지 않을래? 우리 아들, 죽은 사람한테 절하는 법은 알아? …. 여기 이렇게, 밥 먹는 손을 가리는거야.

    예의가 존중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시점에서는 부끄러운 모습을 숨기기 위한 예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어린 아이가 의도했을지 몰랐던 가려진 손 뒤의 웃음이, 사회적으로 올바르게 보여야 한다는 것을 일치감찌 깨달았기 때문일까.

    김동욱

  • 휴대전화 속 부고를 떠올리며 문득 유리 볼 속 겨울을 생각했다.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도 고통 속에 갇혀 허우적대는 주인공 정우와, 세상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평범하고 활기차게 일상을 살아가는 대비가 잔인하게 느껴졌다. 여기서 '시차'란 내가 여행에서 느끼는 감정의 온도와 타인이 느끼는 감정의 온도 차이가 아닐까 싶었다.

    김동욱

  • 두 눈을 가린 사람이 손끝 감각에 의지해 사물의 이름을 알아맞히듯, 아버지는 '선물'의 형식을 빌려 인생의 중요한 마디마디를 더듬고 기념하려 애썼다.

    가난 때문에 자식에게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진 못했지만, 자식이 커가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은 놓치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을 느꼈다. 물질적으로 풍요한 선물은 아니지만 아들의 인생에서 오래오래 기억될 수 있고, 아들이 아버지의 입장이 되었을 때 그 순간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김동욱

  • 눈 감기 전, 그는 자기 말을 알아듣는 누군가가 한 명쯤 곁에 있길 바랐다. 나이나 성, 직업 또는 성격은 상관없었다. 상대가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번 장 '침묵의 미래'는 내용이 어렵고 이해가 되지 않아서 두 번 반복해서 읽었다. 사회가 빠르게 발전하는 만큼 사라지는 것도 많다. 이 장에서는 그것을 '언어'로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전 세계에는 약 600개의 언어가 있다고 한다. 소수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에서 맞닥뜨리는 상황과, 그 속에서 가질 수 있는 감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김동욱

  • 그런데 이번에는 왠지 느낌이 좋아. 잘될 거 같아. 사년 전에도 마지막이라고 말했지만 이번에는 정말 마지막이야. 그러니까 도화야 조금만 기다려줘. 정말 딱 한번만. 내년 여름까지만 부탁할게.

    사랑의 끝이 어떻게 찾아오는가를 현실적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취준과 취업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서로의 간극에 의해 서서히 사랑이 마모되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수의 변명은 간절하지만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김동욱

  • 그랬다. 잠이 안 올 정도로 좋았다. 어딘가 가까스로 도착한 느낌. 중심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원 바깥으로 튕겨진 것도 아니라는 거대한 안도가 밀려왔다. 그런데 영우가 떠난 뒤 결국 그렇게 도착한 곳이 '여기였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비로소 정착했다고 안심한 곳이 허공이었구나 싶었다.

    오랜만에 읽은 문학에서 감정의 자극을 느꼈다. 마침내 이뤘다고 믿었던 인생의 목표가 예기치 못한 상실 하나로 빛을 잃고 무의미해지는 과정이 마음이 아팠다. 결국 그 공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그 안을 채우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점이 먹먹하게 다가왔다.

    김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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