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의 위기
한병철
데이원 멤버가 남긴 구절 3개를 모았습니다.
멤버들이 밑줄 그은 문장
정보사회는 정신적 고도 긴장의 시대를 열고 있다. 정보의 본질이 다름 아닌 놀라움의 자극이기 때문이다. 정보의 쓰나미는 우리의 지각 기관을 지속적으로 자극한다. 우리의 지각 기관은 더 이상 관조적 상태로 전환되지 못한다. 정보의 쓰나미는 주의를 파편화한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이야기하기와 귀 기울이기에 필요한 관조적 머무름을 방해한다.
자극적인 정보의 홍수에 무뎌진 우리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법을 잊게 된다.
조연수
이야기하기의 예술은 정보를 내주지 않는 것이다.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설명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 이미 이야기하기 예술의 절반을 완성한다.” “기록이란 아무리 멀리 있어도 근접성이 발현한 현상이며, 아우라란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원격성이 발현한 현상이다.” ... 반면 정보는 원격성을 버림으로써 세계를 탈아우라화(entauratisieren)하고 탈신비화(entzauberen)한다. 정보는 단지 세상을 앞에 전시할 뿐이다. 그럼으로써 세상을 손에 잡히도록 한다.
지나치게 잘 설명되는 것은 이야기와 거리가 멀다. 세상을 한층 더 알아가게 하는, 하물며 AI의 쉬운 언어로 정리되는 정보에는 아우라가 없다. 근접성과 원격성이 없다.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시간적으로) 가까웠다 멀어졌다를 반복하지 않는다. 이야기와 정보 모두 딱딱할 순 있지만, 정보는 해석의 거리가 없다. 소비되는 즉시 파기된다. “매일 아침이 세상 만물의 새로움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기억할 만한 이야기가 부족하다. 왜일까? 설명이 들어가 있지 않은 일은 더 이상 우리에게 도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벌어지는 거의 모든 일이 이야기가 아니라 정보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책 내 한 대목) 사건이 이야기가 되기엔, 너무 빠른 속도로 가공되고 설명이 덧붙여지고 퍼진다. 점점 서사에 익숙지 않아지는 현대인에게 서사와 멀어질 것들만 넘쳐난다. 정보가 아닌 진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조연수
무언가를 끝없이 공유하고 타인과 교류하면서도 고립감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토리텔링은 ‘스토리셀링Storyselling’이라는 자본주의의 달콤한 무기가 되어 마치 의미가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유혹한다. 세상으로부터 충격받고 저항하고 간극을 느끼며 자신만의 철학을 쌓아올릴 기회를 빼앗고 그저 ‘좋아요’를 외치게 만든다. 스토리는 서사가 아니다. 스토리, 즉 정보는 끊임없이 등장하는 다음 스토리로 대체되어 사라진다. 반면 서사는 나만의 맥락과 이야기, 삶 그 자체다. 나의 저 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기에 방향성을 띤다.
객관적인 데이터에 관심을 쏟다가, 한때 ‘이야기‘라는 주제에 몰입한 적이 있다. 세상은 무수한 이야기로 이뤄져 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소설에서만 표현되는 줄거리가 아니다. 모든 사건은 의미가 덧붙여져 이야기로 전달되고, 인간들은 흥미로운 이야기에 돈을 지불하며, 무엇보다 이를 통해 ‘시대적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우리’로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큰 이야기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21세기 사람들의 마음 속 굳어진 이야기는 “성공의 확고한 기준, 허구적 평범에 대한 높은 가치“이다. 그리고 나조차도 이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럴 수도 없다) “A face. A fleet. A war. A man. A thought. A trick.“ 오디세이 음유시인의 서사시가 떠오른다. 한 남자의 지략이, 크세니아가 저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하나의 아웃라이어가 만들어낸 시대적 이야기의 변화가, 죄책감을 지닌 영웅의 작은 이야기를 통해 전해져 내려온다. 세상 속 이야기가 얽히고 섥혀, 또 이는 음유시인의 입을 통해 노래된다. 각자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지금 사회의 이야기는 또 어떤 모습일까. 작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이 시대의 서사는 이미 저물었는지, 혹은 이러한 이야기가 또 개인을 규정하고 있는지.
조연수
다른 멤버들이 읽은 책
START TODAY
이 책을 읽고 있다면, 한 줄 남겨보세요
하루 한 줄이 쌓이면 내 서재와 연속 기록이 됩니다. 무료로 시작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