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그은 책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데이원 멤버 16이 이 책을 서재에 담았고, 17의 구절을 남겼습니다.

멤버들이 밑줄 그은 문장

  • 과감히 지금의 상황을 보십시오. 인간이 초인이 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 초인은 초인적 힘을 지닐 만한 이성의 수준에는 올라서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이전에는 온전히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던 사실, 이 초인은 자신의 힘이 커짐과 동시에 점점 더 초라한 인간이 되어간다는 사실이 이제는 명명백백해졌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가 의식해야 할 점은, 이미 오래 전에 의식해야만 했던 점은 초인으로서의 우리는 비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말을 보니 요나스의 ‘윤리적 공백‘이 떠오른다. 초인이 되어버린, 새로운 능력을 획득해버린 인간은 기술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어버렸다. 비인간을 유발하는 윤리적 공백을 탈피해야 한다.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히어로에만 적용되는 말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큰 힘이 비인간에 당도하지 않도록, 개인의 얄팍한 양심에 기대지 않고 책임을 규율화해야 한다. ‘초인적 힘에 걸맞는 이성’이란 게 이런 것이 아닐지

    조연수

  • 만약 하나님의 나라와 지상의 나라가 정과 반이라면 새로운 합, 즉, 중세후기 세계의 정신적 핵심과 르네상스 이래의 합리적 사고와 과학발달과의 종합적 대혼란을 대신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이 종합은 ‘존재의 나라’이다.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존재의 세계가 온다면, 지금 이런 전쟁도 없고, 자연친화적이고, 어려운 나라를 서로 도우면서도, 다들 본인 일 열심히 하고 민주주의적으로 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당장 나만 해도 소유가 아닌 존재로서 사고하기가 너무 어렵다. 거꾸로 말하면, 위에 나열한 이상적인 세계는 오기 힘들다는 말 같아서 슬펐다. 그럼에도 사과나무 심는 심정으로 나부터 실천해야 하는 거겠지? 여담이지만 요즘 이런게 가장 고민이다... 남들 다 안 하는 일이지만 옳은 일은, 내가 하는게 맞을까 해서 뭐가 좋을까?

    박세현

  • 취득->일시적 소유와 사용->폐기->새로운 취득, 이것이 소비자 구입의 악순환을 구성하고 있으며, 오늘날 표어는 "새로운 것은 아름답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정말 세계적 차원에서 반성할 부분일 것이다. 핸드폰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2년이면 바꾼다. 이게 과연 100% 소비자의 문제일까? 요즘 시대에는 매년 새로운 기능으로 출시되는 스마트폰 덕택에 바꾸지 않으면 뒤쳐지고 새로운 기능을 쓰지 못한다는 심리가 들고, 배터리도 오래 가지 않는다.

    박세현

  • 만약, 나의 소유가 곧 나의 존재라면, 나의 소유를 잃을 경우 나는 어떤 존재인가?

    연인관계도 마찬가지다. 소유하듯 상대를 생각하면 결국 나를 잃게 되는 것 같다. 진정한 사랑은 서로를 소유하는 것이 아닌 서로의 존재를 나누는 것이라는데, 존재의 나눔이 정확히 어떤 느낌일지는 좀 더 고민해야겠다.

    박세현

  • 안식일에만은 모두가 마치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듯, 존재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목적도 추구하지 않는 듯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 하면 자신의 본질적인 힘을 쓰기 위해서 사는 것 - 오로지 기도하고 연구하며,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며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고, 주변 가까운 누군가가 나에게 종교에 대해 깊이 알려준 적도 없지만, 성경이나 종교적인 여러 말을 들을 때마다 묘하게 내가 추구하는 바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감히 정말 감히 해본 적이 있다.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신의 존재는 솔직히 잘 모르겠으나... 여튼 또 한 번 느꼈다.

    박세현

  • 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라는 표현은 나는 생각한다라든가 나는 이런저런 식으로 상상한다를, 나는 갈망을 가지고 있다 는 표현은 나는 갈망한다를, 나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표현은 나는 뜻한다 를 의 미하는 것이다.

    요건 좀 흥미로웠다. 언어의 변화에서 시대의 사고방식을 읽을 수 있다는 대목이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문장이, 현대에는 ‘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고로 존재한다’로 변 했다는 뜻. 두통이 있다가 영어로 I have a headache로 해석되어 감정조차 ‘가진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언어 속에도 이미 소유적 사고가 깊이 스며들어있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한 번도 생각 못해봤는데 진짜 그러네. 요즘은 정말 경험 같은 것들도 몽땅 다 취득해야 할, 쟁취하고 가져야할 대상으로 인식하는 시대가 된 것 같기는 하다.

    박세현

  •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석가모니와 예수, 에크하르트 수사가 가르쳐준 길로서 삶에 집착하지 않는 것, 삶을 소유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다.

    죽음이 닥쳐온다고 아마 거의 대부분이 공포에 떨 거다. 그 이유는 죽음이라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하기보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삶이 없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온 인생을 두고 죽기엔 아깝다고 생각이 들겠지? 현재를 정말 100% 충실히 살아내면, 그런 마음이 없어지면서 초연히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말 같은데 과연 그게 될까... 여기서 벽이 약간 느껴졌다

    박세현

  • 생기있게 활동하는 사람은 채워짐에 따라 커져서 결코 가득 차지 않는 그릇과 같다.

    생기있게...라는 수식어가 조금 걸리긴 하지만ㅎ 새로운 걸 경험할수록 내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은 기분은 나 역시도 요즘 많이 느낀다. 지난 학기 종강 때 어떤 교수님께서, ‘지금까지는 책 안의 것들을 배웠다면 지금부터는 책 밖으로 나가서 경험하세요. 내 세상의 크기는 내가 만들기 나름입니다.’ 라고 말씀해주셨던 것도 떠올랐다. 너무 힘들고 벅차고, 물리적 시간이 정말 부족해서 제일 본분이 되는 공부를 원하는만큼 못해 스스로 스트레스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올해의 이 경험들은 여튼 돈주고도 못 할 경험ㅎ 인 건 맞는 것 같다고 많이 느낀다. 계속 배우고 깨달아도 또다시 그 너머의 무언가가 항상 있는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이런 문구를 읽으니 위안이 된다.

    박세현

  • 우리 인간은 존재하고자 하는, 뿌리 깊이 타고난 욕구를 지니고 있다.

    누구나 인생에 있어 이상적인 존재 가치를 마음 에 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오는 모순 또한 이상적인 존재 가치와는 괴리감이 클 수 있 다. 그렇다고 또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살아가기 엔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다. 이런 말을 볼 때마다 인간의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항상 궁금하다.

    박세현

  • 이러한 소비행위는 흔히 능동적인 여가활동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사실은 수동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이는 이러한 소비행위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능동적으로 발휘하고 개발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을 단순히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풍요롭게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여행은 소비일까 능동적 행위일까? 삶이 힘들어질 때면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은 경험이다, 시각이 넓어진다고 말한다. 첫 해외여행은 진짜 그랬던 것 같다. 내 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준비해서, 위기에도 스스로 대처하게 되니까. 그런데 해외든 국내든 여행이라는 것을 자주 다니다보니 그런 깨달음보다는 단순히 소비하는 것에서 느껴지는 해방감 같은 것이 더 커졌던 것 같다. 여전히 여행이 좋고 상상만 해도 행복한 것은 맞지만 그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꾸며냄 없이 솔직한 내가 되고 싶다

    박세현

  • 우리가 푸른 유리창을 푸르다고 부르는 근거는 유리가 품고 있는 것에 있지 않고, 유리가 방출해내는 것에 있다.

    그래 내가 어떠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으려면... 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걸 뱉어야 한다 증명해보여야 한다

    박세현

  • 소유지향적 인간은 자기가 사랑하거나 찬양하는 사람을 소유하고 싶어한다. 이런 경우는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친구들 사이에서 볼 수 있다. 양편의 그 어느 쪽이든 상대를 자기 휘하에 두고 싶어 하며, 다만 상대와 가까이 있음을 즐기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 따라서 같은 상대를 "소유하려는" 제3자를 질투할 수 밖에 없다. 소유지향에 근본을 둔관계는 억압과 부담을 주며, 갈등과 질투로 채워지게 된다.

    나는 아직 어쩔 수 없는 소유지향의 인간인가보다... 오늘 정말정말 친한 친구를 만났다가 그 친구, 그리고 같이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두 명까지 셋 각각의 결혼 결심 소식을 전해들었다. 축하하고 잘됐다 싶은 마음만 들어야 하는데, 뭔가 기분이 이상하고 놀랍고 걱정되고 그랬다. 나는 이 때까지 이런 류의 마음들이 다 내가 친구들을 너무 애정해서 라고 생각했는데, 소유 기반의 부담스러운 생각이었을 수도 있겠다 ㅠ_ㅠ...... 갈등과 질투로 채워진 관계는 싫으니까 회개하자..

    박세현

  • 테니슨은 사람과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히 꽃을 손에 쥘 필요가 있었고, 꽃은 그의 소유가 됨으로써 파괴된다. 바쇼는 다만 바라보기를 원한다. 또한 꽃을 그냥 관조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꽃과 일체 가 되기를, 꽃과 결합하기를 원한다. 그러면서 꽃의 생명을 건드리지는 않는다. 테니슨과 바쇼의 차이는 괴테의 다음 한 편의 시에 명시되어 있다.

    철학은 언제보면 약간 무섭기도 하다. 무서울 정도로 모든 것에 이론을 붙일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 하물며 꽃을 노래한 시에도 소유냐 존재냐를 논할 수 있다니

    박세현

  • 소유는 사물과 관계하며, 사물이란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것이다. 존재는 체험과 관계하며, 체험이란 원칙적으로 묘사할 수 없는 것이다.

    유형의 것은 소유하게 되지만 무형의 경험은 존재하게 한다는 말. 경험들이 쌓여 나라는 하나의 인격체를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은 나 역시도 자주 하는데, 거기에서 소유는 빠져도 되는구나

    박세현

  •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내가 무엇을 행할 것인가이기보다는,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이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행하느냐보다는 선하게 존재하는 것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행위를 받치고 있는 근본이다. 우리의 존재는 실재이며, 우리를 움직이는 정신이요, 우리의 행동을 규정하는 성격이다. 반면, 각종 행위와 확신은 우리의 역동적 핵심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실재가 아니다.

    나는 주로 ‘나 여기서 어떻게 하면 되지?‘류의 생각을 많이 하지,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고민은 그렇게까지 많이 안 했던 것 같다. 나 자신을 아는게 가장 중요하다는 말은 매번 백번 되뇌이지만서도 참 어려운 말이기도 한 것 같다. 우리의 존재는 실재요 정신이자 성격이다. 결국 나 스스로의 줏대를 더 굳건히 해야 가능한 마인드겠지

    박세현

  • 소유를 원하는 삶은 결국 이렇게 말하게 된다. “나는 나 자신이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나를 존재하게 해준다.” 이렇게 소유가 존재의 근간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소유를 이기면 위기에 빠진다. 자기 자신 또한 없어져버리기 때문이다.

    드뎌 5월이 왔고 읽고 싶었던 책 스타트 헉 내 자신을 잃은 채 소유로만 가득 찬 나라니. 한번도 이런 느낌으로는 상상해본 적 없는데 틀린 말은 또 아니다. 당장 지금만 해도 태어날 때 갖고 태어난 몸 제외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부 풀소유 상태니까, 근데 그 와중에도 이 계절을 맞이해 뭘 더 사고 싶다. ㅎㅎ;;

    박세현

  • 이러한 경제체계의 발달은 “인간을 위해서 무엇이 좋은가”라는 물음보다는 “그 체계의 성장을 위해서 무엇이 좋은가”라는 물음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사람들은 경제체계의 성장에 유리한 것은 (하다못해 단 하나의 콘체른에라도 유리한 것은) 인간의 행복도 촉진시키는 것이라는 명제를 내세워서 그 첨예한 모순을 얼버무리려고 했다. (중략) 이 특성들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자연적 충동이 아니라 바로 사회적 제약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인정하려고 들지 않았다.

    바로 엊그제, 과외 학생과 자본주의 사회와 돈의 가치에 대해 대화한 것이 떠올랐다. 나의 고3 과외돌이는 쌍윤(생윤,윤사)러라서 철학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아 종종 이런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이렇게까지 다같이 죽어라 노력한 끝이 좋은 대학이고, 좋은 대학은 곧 좋은 직업, 그것은 결국에는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허무하다. 사람들이 돈에 왜 이렇게 혈안인지 모르겠고, 돈이라는 게 왜 필요한지 모르겠어서,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나는 자연인이다 처럼 산에 들어가서 살고 싶다.'라는 식의 말을 했다. 그래서 내가 해준 대답이, '돈이면 다 된다 행복은 궁극적으로 돈에 있다 라는 생각이 틀렸고 아쉬운 것은 맞지만,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하나의 공통 가치가 존재해야함은 맞지 않을까, 누군가는 직업을 통해 자아실현을 할 수도 있겠으나,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말아라. 대신 다만 네가 하고 싶은 무언가만 찾는다면 그걸 위해서 모두가 공통으로 중하게 여기는 가치인 돈으로 그것을 즐기고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직업은 그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러면 보람을 느낀다 등의 감정까지는 아니어도 일이 하고 싶고 필요하고 나아가 가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나름의 토론 비슷한 걸 해주었는데, 내 대답들이 무색해지고 어떻게 보면 부끄러워지는? 구절이었다. 그 놈의 소유라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기란 참 어려운 것 같다. - 오랜만에 새 책을 사서 기분이 좋았다. 밑줄도 긋고 아껴두었던 예쁜 책갈피도 끼워주었다 ^_^*

    박세현

START TODAY

이 책을 읽고 있다면, 한 줄 남겨보세요

하루 한 줄이 쌓이면 내 서재와 연속 기록이 됩니다. 무료로 시작할 수 있어요.

무료로 시작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