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천선란
데이원 멤버들이 이 책에 남긴 기록 14개 중 최근 3개를 소개합니다.
최근 멤버들이 남긴 기록
단지 생각을 다르게 했을 뿐인데 같은 세상에서 누구는 지옥에 있고, 누구는 천국에 있고, 누구는 과거에, 누구는 미래에, 또 어떤 인간은 현실에, 또 어떤 인간은 다른 차원에 있다는 건, 도대체 뭐지? 정작 기억해야 할 건 기억하지 못하면서.
폐허로 변해버린 세상 속에서도 서로를 일으키는 건 결국, 애틋한 기억과 사랑을 지키려는 마음이었다.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어지러운 세상을 기꺼이 품을 수 있다. 근데 정작 곁에 있을 때는 고마움을 잘 모를 때가 많다. 작은 것 하나하나에 집요해지지 말고 존재에 감사할 줄 알자 근데 또.. 그래야 함을 알지만 내 생각과 마음을 스스로 조정하기 참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2026년 8월 2일
그녀는 버려진 연구실 인큐베이터 속에 든 화석 같았다. 몇십억 년 전에 끊겼어야 했던 숨이 타의에 의해 억지로 붙들렸다. 때를 놓친 숨에서는 해묵은 냄새가 풍겼고, 숨의 주인은 이미 오래전 삶으로부터 망명한 듯했다. 그녀는 빛바랜 사진 같았다. 아니, 그보다 햇빛과 바람에 풍화된 그림 같았다. 전시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채 닿지 않는 복도 끝에 초라하게 놓인, 작자 미상의 전시품. 훔쳐 가도 아무도 모를,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그렇게 죽어도 아무도 모를. 처음 보는 이였지만 은미는 그녀에게 알 수 없는 흔연함을 느꼈다. 동시에 혐의했다. 삶의 기록을 담고 있지 않은 얼굴을 은미는 응시하다, 흔연과 혐의 모두 처음 보는 그녀에게서 느낀 동질성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쩍 마른 그녀의 초라한 뒷모습은 해가 뜨지 않은 새벽녘 식탁 의자를 거실 베란다 앞까지 끌고 와 앉아 있던 은미의 뒷모습과 닮았다.
흔연함이란 기쁘게 받아들이는 마음, 반가움,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호감. 혐의란 의심 또는 꺼림칙하게 여김을 뜻한다고 한다. 범죄 혐의할 때 그 혐의와 같은 말이라고... 그러니까 은미는 그녀에게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다. 나와 닮았다 라는 친밀감, 공감의 흔연함과 더불어 저 모습이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라는 거부감과 두려움의 혐의를 함께 느꼈다는 말. 소설 읽으면서 단어가 어려워서 글이 안 읽힌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 처음으로 사전을 찾아가면서까지 이 페이지 전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처음 보는 단어도 두 개나 발견했고... 이렇게까지 묘사를 구체적이고 반복적으로 하는 이유가 있으려나? 전체적으로 약간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든다.
2026년 7월 27일
염증 같은 응어리는 떼어내는 연습을 해야 해. 염증은 몸을 붓게 만들고, 몸이 부으면 숨 쉬는 것도 힘들고 시야도 탁해지거든. 그런 몸으로는 세상을 제대로 마주하기 힘들어. 사람은 몸이 힘들면 똑같은 것도 더 비관적으로 받아들이기 마련이거든. 고마운 것들에 집중하자. 아빠는 세상이 이렇게 변해도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에 매일 감사해.
몸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것들을 떼어내야 한다. 확실히 잠을 많이, 그리고 제때 같은 시간에 자고, 건강 관리를 조금이라도 하면, 훨씬 에너지도 많고 너그러워진다. 그리고 혹시 몸이 힘들어져 날카로워진다면, 고마운 것에 집중해보자!
2026년 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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