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그은 책

우리는 왜 선물을 주고받는가

김정주

데이원 멤버 0이 이 책을 서재에 담았고, 11의 구절을 남겼습니다.

멤버들이 밑줄 그은 문장

  • 현재 우리는 근대민주주의, 근대국가, 시장경제 시스템이라는 언어놀이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죠. 하지만 이런 제도들도 앞선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로 우연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곁에 도착한 것입니다. 어떤 역사적 사건에는 수많은 우연적 요소가 관여합니다. 그래서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역사에 어떤 필연성도 없었음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죠. 이 세계의 연약함. 이 문명의 우연성. 이것들을 깨닫기 위해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진짜 책 이름 :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누군가 취미를 물어본다면 러닝, 테니스 이런 활동적인 취미들을 주로 이야기하는데, 요즘 같은 겨울철엔 너무 추워서 운동보다는 덜 먹기를 선택한다. 이런 시기에 해보는 소소한 취미가 있다면 역사 속 인물들의 삶의 궤적 찾아보기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우연이 섞인 선택의 결과로 지금까지 왔음을 느끼다보면 새삼 내가 작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나은 선택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책방에서 지나가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골랐는데, 근래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곱씹을 내용들이 많았다. 처음엔 에세이 같은 글인 줄 알았는데 철학책이었고 누군가에게 선물을 준다는 개념에서 이렇게까지 흥미로운 논의가 펼쳐지는게 놀라웠다. 다음 책을 고민한다면 한 번 쯤 권해보고 싶다!

    최규환

  • 부모는 증여의 수신처인 아이로부터 생명력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저 의무감만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아이의 시점에서는 '부모가 주는 일방적인 증여'지만, 실은 아이가 부모를 살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대구를 내려갔다 왔다. 대구에 갈 때면 항상 서울의 작은 원룸에서 툭하면 끼니를 거르는 내가 좋아하는 재료들로 냉장고가 가득 차 있다. 나는 스물여섯이지만 아직도 부모님껜 여섯살 애나 다름없다. 결국 3일치 밥을 하루에 우겨넣고 서울로 올라온다. 3월부터 바빠질걸 생각하면 여름까지 이제 집을 가기 힘들 수도 있는데, 아무리 바빠도 매일 전화는 꼭 드려야겠다.

    최규환

  • 흔해빠진 듯한 일상 속에는 무수한 증여(의 고마움)가 숨어있습니다. 우리에게 그것들은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들이 없으면 불만을 늘어놓습니다. 편의점에 진열된 상품, 자판기, 실내의 에어컨, 시간표대로 운행하는 기차, 위생적인 환경, 각종 인프라, 의료, …역설적이게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언가가 '없음'은 잘 알아채지만, 무언가가 '있음'은 깨닫지 못합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저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거기 있는 것'을 언어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저 거기 있는 것들이 실은 우리에게 주어겼다는 사실, 그저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야 마땅하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들이 만약 없어지면 정말로 곤란해진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어제와 그저께 서울 시내버스가 총파업을 할때 과외를 가야하는 길 앞에서 순간 뇌정지가 왔다. ‘버스가 없으면 어떻게 가지..?’ 다행히 버스의 빈틈은 튼튼한 내 다리로 해결했지만, 너무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이 순간 사라졌을 때 그제서야 감사하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최규환

  • 우리가 시간을 들여 함께 야구를 하면서 경기 전체를 관찰하고 '파울‘의 의미를 조금씩 배우듯이,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해온 언어놀이를 조금씩 배우고 함께 언어놀이를 만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창문'이라는 낱말을 언어놀이에 섞어가며 배웠듯이.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언어놀이를 함께 만드는 것입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는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아, 이 사람이 지금 나한테 맞춰서 대화하기 위해 노력중이구나’ 하는 부분들처럼.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날카로워지지 않기 위해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저 사람은 왜 저래’라는 생각을 접어두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

    최규환

  • 오로지 사랑이라는 이유만이 그 불합리성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즉, 사랑은 오직 불합리로부터만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저 합리적인 이유만 열 개, 스무 개씩 늘어놓는 것은 사랑의 메시지에서 가장 동떨어진 말입니다. 귀여워, 착해, 멋져, 세련돼, 가까이에서 눈에 띄는 건 속눈썹··· 등을 나열하면 할수록 '나'라는 존재에서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 특징들을 만족하는 존재라면. 나를 대신할 존재는 얼마든지 있을 것만 같죠. 그 특징들은 나의 영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말들입니다.

    불합리성이란 어떤 느낌일까, 아마도 수학적인 계산이나, 효율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통칭하는 단어 아닐까? 사랑의 본질적인 부분을 다루는 진지한 구절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읽으면서 며칠 전 두쫀쿠를 사려고 서 있는 줄이 떠올랐다. 아, 저런 불합리성(?)을 해소할 수 있는건 사랑뿐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최규환

  • 그 남자의 어머니는 인지저하증을 앓고 있었고. 매일 오후 4시가 되면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인지저하증의 흔한 증상인 '배회'였죠. 남자는 어머니의 외출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하고, 어머니는 절규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날들이 계속되었죠. "어머니, 왜 매일 4시만 되면 나가려고 해요?" 물어봐도 이렇다 할 답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중략) 어머니는 오래전의 선명한 기억 속 세계에서 오후 4시마다 어린 아들을 마중하러 나갔던 것입니다. 그 행동은 타인의 눈에 배회로만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머니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이 외로운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마땅히 해야 하는 행동이었죠. 그러니 어머니가 외출을 막는 존재를 악당으로 여기고 폭력까지 휘두르며 맛서려 했던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어머니는 '배회'라는 행위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아들을 마중 나간다. 라는 자기 나름의 이야기 속에서 살아갔던 것입니다.

    읽으면서 눈물이 찔끔 흘렀다.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발현되는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이란 그 근원지가 대체 어디인가

    최규환

  •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산타클로스의 모습은 1931년 코카콜라가 광고용으로 만든 것이라고 하지요. 즉, 머나먼 북쪽 나라에서 찾아오는 마음씨 착한 산타클로스'라는 판타지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현대의 신화인 것입니다.우리는 시장경제라는 교환의 논리의 한복판에서 증여를 성립시키기 위해 산타클로스를 발명했습니다. 산타클로스란 실로 불가사의한 제도입니다. 어째서 문화에 상관없이 전 세계에서 산타클로스라는 존재가 이토록 기능할 수 있을까요? 그 이유는 산타클로스라는 장치가 '이건 부모가 주는 증여다.'라는 메시지를 지우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산타클로스 덕분에 아이가 부모에 대한 부채의식을 떠안을 필요없이 순수하게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죠. 산타클로스는 사람이 아닙니다. 산타클로스는 답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증여라는 불합리를 합리성으로 회수하기 위해 필요한 장치, 기능에 주어진 이름이며, 증여의 어려움을 뚫고 나아갈 방법입니다.

    (진짜 책 이름: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산타의 정체를 알게된건 12살때였던 것 같다. 다들 생각해보면 산타의 정체를 모르던 12월 24일 밤과 다음날 아침, 그때만큼 설레고 기대되었던 때가 또 있을까? 그 정도로 답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증여라는 것은 너무나도 큰 가치를 지닌다. (하늘에서 나에게만 떨어지는 선물을 상상해보면, 내가 아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는 것보다 꽤나 더 많이 기쁘고 설렐듯 하다)

    최규환

  •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정리해보죠. 요컨대 '증여는, 그것이 증여라고 알려져서는 안 된다. 라는 말입니다. '이건 증여다. 너는 이걸 받아라.라고 분명히 이야기될 때, 증여는 저주로 바뀌어 수취인의 자유를 빼앗습니다. 수취인에게 무언가 건네지는 순간 그것이 증여라고 뚜렷이 드러나면 그 즉시 답례의 의무가 생겨나버리고, 보상을 바라지 않는 증여에서 '교환'으로 변모하고 말죠. 그리고 수취인에게 교환할 것이 없는 경우, 수취인은 부채의식에 짓눌려 저주에 걸립니다.

    (진짜 책 이름: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생각치 못한 선물을 받았을 때 당연히 고맙고 좋은 감정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부담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가 적혀있다. 아마 카카오톡 선물하기 기능이 생긴 이후 다들 최소한 한 번 이런 경험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내 생각엔 이러한 부채의식의 근원은 서로가 생각하는 관계의 깊이가 다르다는 점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최규환

  • 제가 부모와 함께 살았던 시절, 어느 1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환갑이 지난 어머니에게 별생각 없이 "운동도 할 겸 개를 기르면 어때요? 새해 선물로 알아볼까요?"라고 물었는데, 곧바로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습니다. "개보다 손주." 어머니의 득달같은 반격에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진짜 책 이름: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5년 전에는 부모님과 여행을 가고 저녁에 맥주를 한잔 하며 하는 이야기가 나와 형의 진로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요즘 손주 타령을 하기 시작하셨다. 옆집 어르신의 손녀만 봐도 껌뻑 죽으시는데, 피가 섞인 아기엔 얼마나 지극정성이시겠는가. 난 서른에 졸업인데, 서른에 이미 첫째를 키우고 있었던 부모님이 새삼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난 둘째니까 형이 먼저 손주 안겨드리겠지하는 무책임한 마인드와 함께..)

    최규환

  • 증여의 이해할 수 없는 점은 더 있습니다. 바로 선물을 받는 쪽이 아니라 주는 쪽, 즉 발송인이 되는 게 때로 더 큰 기쁨을 준다는 점입니다. (…) 다시 말해 증여를 받아주었다는 것은 상대방이 나와 무언가 관계, '연'을 맺는 것을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내 선물이나 축복을 상대방이 흔쾌히 받아주었을 때, 우리는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진짜 책 이름: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새해가 되면 오랜만에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연락을 안 한지 오래되어 부담스럽지 않으려나 생각이 들곤 하지만 새로운 한 해가 밝았음을 핑계삼아 연락을 남기곤 한다. 6개월 내지는 1년 넘게만에 보내는 연락들은 몸은 다소 멀리 있을지라도 ’연‘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을 담고 있기에, 화답이 오는 경우에 안도와 기쁨을 느끼는 듯 하다.

    최규환

  • 선물로 받은 시계도, 잃어버리고 내가 구입한 시계도, 물건으로서는 대등할 텐데 우리는 아무래도 똑같이 여기지 못합니다. 선물에는 물건으로서의 가치, 즉 상품 가치에서 벗어난 무언가가 있다고 무의식중에 느끼는 것이죠. (중략) 누군가에게 받은 순간, 그 물건은 이 세계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로 변모합니다. 그리고 증여란 바로 물건을 '물건이 아닌 것'으로 변환하는 창조적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이 증여해주었을 때만 정말로 소중한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짜 책 이름: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이 책에서 증여의 의미는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부동산, 주식 증여와 같은 세속적인 의미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따뜻한 말이다) 지금 내 필통 속 가장 소중한 물건은, 고2때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생일선물로 받은 샤프이다.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은 물건은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소중한 물건으로 인식되는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편지의 가치는 말로 형용하기 힘들다. 단지 종이 위에 은은히 담겨있는 몇 글자일 뿐인데. 어떤 선물보다도 무겁다.

    최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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