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구병모
데이원 멤버 13명이 이 책을 서재에 담았고, 13개의 구절을 남겼습니다.
멤버들이 밑줄 그은 문장
머릿속에서 이성의 목소리가 내게 말을 건넨다. 추억은 그대로 상자 속에 박제된 채 남겨두는 편이 좋아. 그 상자는 곰팡이나 먼지와 함께, 습기를 가득 머금고서 뚜껑도 열지 않은 채 언젠가는 버려져야만 하지. 환상은 환상으로 끝났을 때 가치 있는 법이야. 한때의 상처를 의탁했던 장소를 굳이 되짚어가는건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아.
환상은 환상으로 끝났을 때 가치 있는 법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환상을 현실로 끌고와 직접 경험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아름답지가 않다. 첫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완성되는 것과 비슷한게 아닐까싶기도 하다.
백채린
무엇보다도 사람의 감정은 어째서, 뜨거운 물에 닿은 소금처럼 녹아 사라질 수 없는 걸까.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참치 통조림만도 못한 주제에. 그러다 문득 소금이란 다만 녹을 뿐 사라지지는 않는다는걸 깨닫는다. 어떤 강제와 분리가 없다면 언제고 언제까지고 그 안에서.
감정은 녹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이미 한 번 스크래치가 나버리면 새살이 돋아난다한들 흉이 남아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말을 할 땐 늘 신중을 가해야되는 것 같다. 이미 긁어놓고 사과하는건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백채린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인간의 모든 의지와 노력, 욕망과 의미를 수포로 만들어버리는 낱말이 바로 '시간'이지 않을까. 이 순간 아닌 지나간 모든 것이 박제나 화석 또는 추억 이라는 이름으로 변형되는.
시간은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지나고보면 힘들었던 순간들도 미화가 돼서 좋았던 부분들만 빼내어 기억에 남고 나머지는 휘발된다. 그래서 인간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 같기도 하다.
백채린
나는 서러움도 체념도 아닌 순수한 기쁨과 감격 때문에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누군가 이런 단순한 한마디로 나를 오해 대신 인정해준 적이 있었던가. 그것은 또한 끝나지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긴 밤의 시련을 견딘 나 자신에 대한 인정의 의미이기도 했다. 나는 스스로를 칭찬하는 데에 너무 인색했던 모양이다.
누군가에게 처음 인정받은 순간은 잊을 수 없다. 긍정적인 피드백이 없는 상황에서 매일 지내다보니 내가 잘하고 있는건가 불안했을때 들었던 한 두마디의 칭찬들은 신규 시절을 버티게 해줬다. 지나고보니 원래 사회초년생에게는 칭찬이 야박하단걸 알게됐다. 그래서 나보다 늦게 사회인이 된 친구들이 같은 고민을 할 때 지금 잘하고있다는 말을 아낌없이 쏟아부어줬던 것 같다.
백채린
확률 이론이 발달한다고 해서 그것이 우연이나 기적의 완전한 종말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어딘가에서 평소와 다른 어떤 힘이 발생하면, 그것과 일상성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또 다른 유형의 힘이나 반대 극에 있는 힘이 한편에서 작용하여 지나치게 확산된 에너지의 흐름을 잡아당긴다. 그럼으로써 생성과 소멸의 논리를 이루어나간다.
내가 기적을 겪을 때, 어쩌면 균형을 맞추기 위해 누군간 소중한걸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당장 보이는 내 이익만 크게 느껴져서 그런걸지도 모른다. 우연과 기적을 바랄땐 잃을 각오도 해야된다는 원리를 되새기다 보니 되게 인생이 주식같이 느껴지고 그러네..
백채린
"마셔. 조금 진정될 거다. 혓바닥 데지 않게 조심하고." 교복이 한 모금씩 데운 우유를 마시는 동안 점장은 그 맞은편 의자에 앉아 기다려주었다. 진작 그럴 거면서, 아무리 개념 상실한 손님이라도 고통과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한테 안정을 되찾을 시간을 줄 생각이었으면서, 의도와 행동이 따로 놀기는.
개념상실한 손님이라도 고통과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이라면 안정을 되찾을 시간 주기.. 마음에 새기고 일할 때 실천해봐야겠다.
백채린
"그래도 안 돼. 자기 문제는 자기가 알아서 부딪칠 것. 운 좋으면 해결될 수도 있고 더 나빠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일시적으로 숨겨준 건 그래도 단골손님이었기 때문이지 딴 뜻 은 없어. 지금 숨으면 앞으로 다른 일이 생겨도 몸을 피하려고만 할걸."
해결하기 힘든 일은 본능적으로 회피하게 된다. 그렇지만 내 일을 해결할 수 있는건 나뿐이라 미룬다고 해도 영원히 그 자리에 남아서 마음만 불편해지는 것 같다. 그치만.. 남은 사랑니를 빼러 가는 용기는 아직 생기지 않는다.... 겪어본 고통이라 더 무섭다.....
백채린
쉽게 말해 남의 목을 조르려는 자는 자기 관자 놀이가 먼저 터질 각오를 해야 한다는 거겠지. 그런 의미에서, 순간이나마 이 수많은 품목들 가운데 몇 가지를 배 선생에게 써보고 싶었던 나의 마음은 사그라졌다.
남을 괴롭게하려면 그만큼 나도 괴로울 준비가 되어있어야한다. 그래서인지 나의 안위를 위한다는 이유로 어느순간부터 타인을 미워하는 행위를 점차 멈추게된거같다.
백채린
배 선생이 내게 사소한 장면들을 하나하나 얹어주어 무게감과 압박감을 키운 것 못지않게, 그녀 자신에게도 누적되는 고통들이 있었으리라는 짐작은 쉽게 갔다. 따로따로 떼어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 그러나 마치 원소들이 모여 분자를 이루는 것처럼, 그렇지만 그게 내 탓은 아니잖아. 나는 단지 거기 존재했을 뿐인데.
일하면서 듣는 잔소리 중 대부분은 떼어놓고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다. 사소하고 별 거 아닌걸 지나고보면 모두가 알지만 극한의 멀티 상황에서는 사람들도 같이 뾰족해지는 것 같다. 그치만 소설 속 말마따나 내 탓도 아니고 그냥 거기 존재해서 생긴 일뿐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좀 가벼워진다.
백채린
아버지는 동화 속의 새엄마가 '절대로' 없다고 단언했으나 절대로만큼 폭력적인 말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동화가 아무리 가공의 이야기라도 덮어놓고 허튼소리는 하지 않는 다. 시대와 문물이 변한대도 사람의 속성에 그리 극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이 변한다는 말을 안믿긴하지만, 영원히 똑같은 사람도 없다. 누구나 자신만의 터닝포인트를 겪어가며 변하게 되는 것 같다. 그 변화로 항상 더 좋은 사람이 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뭐 나아간다는 것에 의미를 가져보는걸로
백채린
때는 인지능력의 미분화로 인해 현실과 동화를 구분하지 못하지만, 일정한 나이를 넘어서면 현실을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과 누구나 조금씩 갖고 있는 피터팬신드롬 때문에 인격은 복합적인 혼돈을 일으킨다. 그중 대다수는 잠깐의 방황 뒤 그저 그렇게 동화를 잊은 채 살아질 뿐이고, 극소수 일부는 천장에 목을 매달거나 돌아버린다. 나는 지금 대다수 가운데 하나다…
나는 내가 영원히 23살처럼 느껴진다. 취업도 하고 벌써 일한지가 2년이 넘어가고 그 사이의 정신적인 성장이 분명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중 한 23살쯤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나이가 가장 재밌어서 그랬나 어쨌든 그런 동화 속에서 잠깐 방황을 하다가 결국은 잊어버리고 현실을 살게 될때면 좀 슬프긴하지만 차라리 대다수에 속하는 편이 다행인걸지도..
백채린
남 얘기는 그만. 실은 나부터가 타인의 정신 상태를 감정할 만한 주제가 못 되면서. 세상 사람들 눈에는 작으나마 장사거리라도 가진 젊은 남자보다는, 나야말로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녀석으로 보일 터였다.
타인보다는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그게 당연한 분위기 속에서 살아간다면 보다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싶다.
백채린
...대체 누구에게 물어본다는 거지? 이대로 돌아가 집 현관문을 연다는 건, 그곳에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러기에 지금 이 난감한 가게에서 빵을 사갖고 나온 거잖아. 빵 한 입에 우유 한 모금 물고서, 건조하지도 눅눅하지도 않은 오늘분의 감정을 꼭꼭 씹어, 마음속 깊숙이 담아둔 밀폐 용기에 가두기 위해.
자취생으로서 공감이 가는 구절이였다. 오늘의 하루와 감정을 공유할 사람이 집에 없다는건 좀 쓸쓸하기도 하지만, 나만 간직하는 일들로 수집하는 재미도 있는 것 같다.
백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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