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그은 책

자존감 수업

윤홍균

데이원 멤버 5이 이 책을 서재에 담았고, 4의 구절을 남겼습니다.

멤버들이 밑줄 그은 문장

  • 직장은 낭만적인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직장은 힘든 곳이다. 그래서 월급을 준다. 그것도 날짜를 정해놓고 규칙적으로 준다. 안 그러면 남아 있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직장이 그렇게 달콤한 곳이고 가치 있는 곳이라면 우리에게 돈을 줄 리 없다. 미안하니까, 나가지 말라고 돈을 쥐여준다. 물론 행복을 안겨줄 때도 있다. 힘들 때마다 힘이 되어주는 동료도 직장에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시적이라 궁극적인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조금 심하게 말해 직장은 우릴 이용하고 힘들게 하고 화도 나게 한다. (중략) 내담자 중에는 직장 생활에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짐작건대 힘든 취업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기 최면도 작용한 것 같다. 이들이 갖는 환상은 직장은 꿈을 이뤄주는 곳, 멋진 커리어우먼,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곳, 아름다운 인간 드라마가 있는 곳이다. 단언하는데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나는 나의 선택이 마음에 든다. 그 선택이 이끌어준 직장들도 하나같이 좋았다. 물론 중간에 힘든 시기도 있었고, 인생의 너무 오랜 기간을 낭비하게 만든 상사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마음에 든다. 회사 스트레스로 회사 밖의 내가 움츠러들었을 때도, 새로운 스스로의 모습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글이 말하는 바에 반쯤은 동의하면서도, 나머지 반은 유보한다. 직장이 원래 힘든 곳이라는 전제를 너무 빨리 받아들이면, 그 안에서의 경험까지 통째로 평가절하하게 되지 않나 싶어서다. 다만 한 가지 경계하는 것이 있다. 이 적응력과 자존감이 현실을 견디는 힘이 아니라, 현실에 안주하게 만드는 관성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지금 이곳에 머무르며 그리는 커리어가 실은 합리화를 거친 끼워맞추기일 수 있다. "잘 하고 있음"과 "잘 하고 있다는 착각"은 당사자 입장에서 구분이 어렵고, 구분이 어렵다는 사실 자체가 이 문제를 까다롭게 만든다. 요즘 가장 자주 하는 생각이다.

    이혁

  • 자기가 하는 일의 가치가 의심스러울 땐 직업, 직장, 꿈을 분리해서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자칫 이 세 가지 모두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직업, 직장, 꿈. 이 셋을 분리해서 사고하라는 말이 단순해 보이지만, 곱씹을수록 꽤 날카로운 통찰이다. 직업과 직장은 당장의 현실이다. 내일 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면 꿈은 다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방향을 틀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셋이 하나의 산업 분야 안에 완전히 정렬되어 있을 때 생긴다. 직업과 직장이 흔들리는 순간, 꿈마저 함께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꿈이 도피처가 되어야 할 때, 정작 도피할 곳이 없어지는 셈이다. 그렇다고 자존감 회복을 위해 억지로 꿈의 방향을 틀어버리는 것도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그건 치유가 아니라 회피에 가깝다. 그렇다면 가장 건강한 전략은 이 세 가지의 다각화가 아닐까. 하나의 축이 흔들려도 다른 축이 나를 지탱해줄 수 있도록, 2개 이상의 분야에 걸쳐 Plan B를 두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점들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이어지다 보면, 그 사람만의 고유한 조합이 만들어진다.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길은, 어쩌면 한 우물이 아니라 여러 우물 사이의 연결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꿈을 재능·열정·가치의 교집합으로 정의하는 프레임워크들이 있다. 이 교집합 자체도 하나만 두어야 할까? 문득, 교집합마저 복수로 존재할 수 있다면 — 그것이야말로 진짜 의미의 다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혁

  • 우리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이면서도 나에게 직접적인 이득이 되는 목표를 정해두면 성공할 확률도 그만큼 커진다. 예컨대 고등학생에게 “너는 왜 공부를 하니?”라고 물었을 때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거나 “엄마가 좋아할 테니까”라고 대답하는 학생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닐 확률이 높다. 차라리 “서울대학교에 가면 고액 과외도 할 수 있고 취직도 잘되니까요”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의 학습 동기가 더 높다.

    문득 '피드백 루프'의 중요성이 떠올랐다. 결국 동기가 오래 유지되려면 행동과 보상 사이의 간격이 짧아야 한다.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는 피드백이 오는 데 수십 년이 걸리지만, "서울대 가면 과외비를 많이 받는다"는 목표는 합격이라는 비교적 가까운 이정표가 있다. 나 역시 내 주변 환경을 의도적으로 설계해서, 작은 진전에도 빠르게 반응이 돌아오는 구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스스로 그 피드백을 만들어내는 것도 방법이다. 누군가에게 "우쭈쭈라도 해줘"라고 먼저 요청하는 것이 어색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현실적인 동기 유지 전략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이 구절이 '비전을 파는 사람들'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막연한 이상을 내세우는 사람보다 구체적인 이익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사람이 더 어렵다. 비전은 감동을 주지만, 이익은 행동을 만들어낸다. 그 둘을 함께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대단한 것 아닐까. 예전에 누군가 "사람을 설득하려거든 이익에 호소하라"고 했던 말이 이 대목에서 겹쳐 보였다. 숭고한 명분보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사람을 움직인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냉정하고 정확한 관찰일지도 모른다.

    이혁

  • 당신이 힘든 이유는 자존감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체력이 바닥나서 지쳤을 수도 있고 돈이 없어서 괴로운 것일 수도 있다. 힘든 이유가 사랑 때문이라고 섣불리 결론 내지 말기를 바란다. 또 사랑은 원래 나랑 안 맞는다거나 사랑은 괴로운 거라고 쉽게 단정 짓거나 일반화하지 말았으면 한다. 자존감이 낮다고 해서 너무 실망할 필요도 없다. ‘아, 나에게 자존감 문제가 있었구나. 그래서 그동안 사랑이 힘들었구나’ 정도만 깨달으면 된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사랑이란, 연인 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상을 파악할 때 나는 무엇이 선행지표이고 무엇이 후행지표인지를 자주 따지는 편이다. 원인과 결과의 순서를 규명하고, 단순한 상관관계인지 실질적인 인과관계인지를 구분하려 한다. 그런데 자존감과 사랑에서 파생되는 감정들의 관계를 생각하다 보면, 이 둘은 선후를 가리기가 유독 어렵다는 걸 느낀다. 자존감이 낮아서 사랑이 힘든 걸까, 아니면 사랑에서 상처를 받다 보니 자존감이 낮아진 걸까. 생각할수록 두 변수는 서로를 원인이자 결과로 삼으며 강화하는 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낮은 자존감은 관계에서 불안과 의존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왜곡된 관계는 다시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이 루프 안에 있으면 어디서부터 끊어야 할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를 따지는 것이 이 맥락에서는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을 수 있다. 기원을 규명하는 것보다, 지금 이 순환이 어느 지점에서 작동하고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이 더 실질적인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책이 '너무 실망할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일 것이다. 원인 추적보다 현재 상태의 인식이 먼저라는 것. (선순환으로 들어서기 위해 우선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을 찾는 것도 막막하다. 그런 의미에서 자존감 회복을 연애로써 하는 사람들을 마냥 손가락질 하는 것도 섣부른 판단에 기초한 통념일 수도 있겠다.)

    이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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