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그은 책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개정판

박민규

데이원 멤버 21이 이 책을 서재에 담았고, 20의 구절을 남겼습니다.

멤버들이 밑줄 그은 문장

  • 함께한 시간 동안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닮아가고 흡수하고 있었음을... 좋든 싫든, 해서 서로에게 서로가 남아 있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우리가 있다는, 그리고 우리에게 내가 있을 거란 그 사실이 조금은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

    시절인연이라고 할지라도.. 내게 어떤 사람의 조각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처럼, 그 사람에게도 그럴거라고 생각하면 어딘가 위안이 된다.

    유아란

  • 그럴듯한 인생이 되려 애쓰는 것도 결국 이와 비슷한 풍경이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이왕 태어났는데 저건 한번 타봐야겠지. 여기까지 살았는데... 저 정도는 해봐야겠지, 그리고 긴긴 줄을 늘어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버리는 것이다. 삶이 고된 이유는... 어쩌면 유원지의 하루가 고된 이유와 비슷한 게 아닐까, 나는 생각했었다.

    누구에게나 그럴듯한 인생을 살고싶은 마음은 있는 것이다. 그럴듯한 대학, 직장, 배우자, 집.. 그치만 이런 것들을 원할때.. 반드시 자신만의 의미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그럴듯해서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신념, 욕심, 욕망..

    유아란

  • 실은 그런 식으로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인생의 어떤 순간에도 인간은 머물 수 없음을, 하여 인생은 흐르는 강과 같다는 사실을 무렵의 우리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작년 겨울 언젠가… 아마 내 인생의 가장 평온하고 행복한 한 챕터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문득 느낀 적이 있었다. 어떤 때가 가장 행복했다 라는 것은, 반드시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인데… 그때에는 바로 그 순간에, 현재에 머물면서 느낄 수 있었고 ,, 그만큼 충만한 날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유아란

  • 태양과 바다와 꽃들은 실은 언제나 이 세계에 머물러 있고, 우리에겐 그 사실을 망각하지 않을 테크닉이 필요할 뿐 이었다.

    이런 것들이 늘 곁에 있음을 망각하지 않기… 감사일기라도 써야할까?

    유아란

  • 빈병을 치우고, 거품이 말라붙은 잔이며... 접시를 씻고, 식탁의 주변과 거실을 말끔하게 쓸고 닦았다. 그리고 끝으로... 요한의 웅크린 몸 위에 담요를 덮어주었다. 다만 아무 일 없이, 아무 일 없는듯 그가 아침을 맞이하기 바라는 마음이었다. 오디오와 가스밸브를 확인한 후 나는 형, 하고 시작하는 짤막한 메모를 쓰기 시작했다. 짧은 메모였지만, 청소를 한 번 더해도 좋을 만큼의 시간을 소비한 메모였다. 형도 성공작이에요.

    사람을 살리는 건 아주 약간의 귀찮음을 감수하는 선의…

    유아란

  • 대부분의 자식들이 그렇듯 나 역시 아버지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못하다.

    어쩌면 가족이야말로 서로를 가장 모를수도 있지..

    유아란

  • 결국 이 세상은 눈가림이야. 눈만 가려주면... 또 눈만 만족시켜주면 지옥 끝까지라도 달려갈 바보들이지. 세상을 망치는 게 독재자들인 줄 알아? 아냐, 바로 저 넘쳐나는 바보들이야.

    의심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세상을 망친다. 편안함에 속아서 불편한 사실을 외면하지말자.

    김지원

  • 그리고 인간은 실패작과 성공작을 떠나, 다만 〈작품〉으로서도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생각했었다.

    이미 인간은 하나의 작품이라 성공이나 실패, 남들이 세운 기준에 의해 가치가 결정되는게 아니다. 그러니 조금 더 자신감 가져보고 나 자신을 믿어봐야겠다

    김지원

  • 화장실을 다녀온 요한은 또 느닷없이 신데렐라의 진짜 엔딩에 대해 열변을 토했었다. 그래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그건 엔딩이 아니야. 삶은 말이야, 그보다 훨씬 긴 거라구. 잔혹할 정도로 지루한 거지. 실은 그리고 왕자는 곧 싫증을 느껴

    삶이 항상 극적이거나 의미로 가득 차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만드는 문장, 대부분의 시간이 지루하고 특별하지 않고 반복적이다. 하지만 행복한 결말보다 중요한건 그 이후의 평범한 삶을 어떻게 살아내느냐인 것 같다

    김지원

  • 돌이켜보면 세상의 시소도 이미 기울어진 지 오래였다. 〈좋은 것〉이 〈옳은 것〉을 이기기 시작한 시대였고, 좋은 것이어야만 옳은 것이 되는 시절이었다.

    좋은 것과 옳은 것이 점점 멀어지는 시대 같지만,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김지원

  • 첫눈에 누군가의 노예가 되고, 첫인상으로 대부분의 시합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외모에 관한 한, 그리고 누구도 자신을 방어하거나 지킬 수 없다. 선빵을 날리는 인간은 태어날 때 정해져 있고, 그 외의 인간에겐 기회가 없다. 어떤 비겁한 싸움보다도 이것은 불공평하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외모선빵이론을 보고 어이없으면서도 웃겼다. 절대적으로 맞는말이다, 예쁘고 잘생긴게 역시 짱이다

    김지원

  • 인간의 외면(外面)은 손바닥만큼 작은 것인데, 왜 모든 인간은 코끼리를 마주한 듯 그 부분을 더듬고 또 더듬는 걸까? 코끼리를 마주한 듯 그 앞에서 압도되고, 코끼리에 짓밟힌 듯 평생을 사는 걸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인간의 외면은 작은 부분일 뿐인데 타인의 시선, 사회가 정한 기준, 보이는 모습들이 실제보다 훨씬 거대하게 부풀려져 우리의 삶을 짓누른다. 하지만 정말 코끼리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믿고 있을 뿐일까. 외면이 삶 전체를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삶을 살아가는 건 그 안의 사람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김지원

  • 벌써부터 캐럴을 틀고 말이야... 올드 랭 사인조차 두 번이나 들었지 뭐야. 그만큼... 아쉬워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쉬우니까... 곧... 이렇게 가버리니까. 왜 미리 아쉬워하지? 그때 가서 해도 되잖아? 어쩌면 그 순간 아쉬움이 사라지기 때문이겠죠. 이제 더는 어쩔 수 없으니까. 아쉬워해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는 거니까... 정 그렇다면 봄부터라도 틀었어야 하는 거잖아. 그때부터 아쉬워하기엔 너무 아까운 거예요. 뭐가? 그러니까... 가능성 같은 거겠죠. 아쉬워하지 않아도 될 가능성...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지? 그런 질문을 봄에 품었다면 지금쯤 어느새 이런 식으로 변해 있는 거예요. 어떻게 그런 걸 모를 수 있었을까? 라고... 인간의 아쉬움도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가. 나는 아쉬움이 그리움으로 바뀌더라. 아직 아쉬워하지 않아도 될 가능성이란 말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은 붙잡을 수 없다. 최악이 아니라면 어떻게 아쉽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난 대체로 사랑하고 있기에 모든 게 아쉽고 그립다.

    정수아

  • 누군가를 사랑한 삶은 기적이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던 삶도 기적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많은 인연이 스쳐가지만 마음 깊은 곳까지 들어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경계 없이 마음을 열다 상처를 받는 일도 있지만, 그럼에도 또 마음을 열고 서로의 삶 속에 들어와 기쁨과 슬픔을 나눈다. 사랑했던 시간을 결과로만 설명할 순 없다. 사랑해본 기억과 그 마음을 받은 기억은 오래 남아 더 다정한 사람이 될 용기를 준다. 기적같은 일이다.

    김연수

  •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란 오해, 그에겐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녀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오해, 그에게 내가 필요할 거란 오해, 그가 지금 외로울 거란 오해, 그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모든 사랑은 오해다”라는 문장을 보고 꽂혀서 이 책을 펼쳤다. 생각해 보면 사랑은 늘 내 마음대로 상상을 덧입히고, 내 멋대로 해석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상대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가 보고 싶은 모습만 보고 있는 걸 수도 있다. 그런데 또, 세상에 완전히 분명한 본질이 있긴 한 걸까? 나만 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마음인지 잘 모를 때가 많은데. 그렇다면 타인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도 애초에 불가능한 일 아닐까 싶다. 결국 모든 관계는 자의적인 해석, 그러니까 오해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다만 내 오해와 상대의 행동이 어긋날 때 관계의 균열이 시작되는 것 같다. ... ... .... 🥺

    정수아

  • 세상엔 장애를 지니고 태어나는 사람도 많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염치없고 이기적인 생각임을 알고 있지만,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았습니다. 적어도 사람들은 그들의 장애를 인정은 해주니까요. 세상엔 장애를 지니고 태어나는 사람도 많단다, 라고 말하며 사람들은 저의 어둠을 장애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수히... 저를 장애인으로 만들어왔습니다. 인정받지 못하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지만... 저는 분명 세상이 만들어낸 장애인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들과 함께 학교를 다녀야 했고, 남들과 비슷한 옷을 입어야 했고... 그리고 언제나 남과는 다른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역시나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자가 떠나며 편지를 썼다. ‘세상이 만들어낸 장애인’이라는 표현이 너무 쓸쓸하다. 세상은 다름은 다름일 뿐인데 밀어내고 고립시켜버린다.

    김연수

  • 미안해요. 왜 이런 말들을 늘어놓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꼭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부끄럽진 않은지, 또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곧 부끄러워지는 게 아닐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저 나 자신을 납득하기가 힘든 거예요. 문제가 많은 여자죠. 그리고 두려워요. 굳게 잠긴 그 방에 누군가 찾아온다는 것이... 들어올 것 같다는 것이... 언젠가 문을 열게 된다면 이제 다시는 그 문을 닫을 수도, 잠글 수도 없다는 걸 느끼고 있는 거예요

    여자 주인공은 상처를 겪어봐서 사랑이 마냥 기쁘지는 않다. 다시 잃을 가능성까지 먼저 떠올린다. 그래도 사랑이 두렵다는 건 그 사랑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있고 사랑의 무게를 알고 있다는 뜻이라 오히려 멋지다.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김연수

  • 그 순간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다만 피고 지던 꽃 같은 것... 해서 사라진 인생의 환 하나를 새삼스레 떠올리는 기분이다. 그녀도 나도 열아홉 살이었다. 누구에게나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시절이 있는 법이다.

    남자 시점으로만 전개가 돼서 이 순간의 여자의 마음이 궁금하다. 모두가 불친절한 세상 속에서 사는 여주에게는 말없이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것이 반갑기도, 동시에 두렵기도 했을 것 같다. 이 순간만큼은 의심보다 설렘이 크기를 바란다. 그냥 무난한 사랑의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김연수

  • 말하자면, 그때까지도 꽤 많은 못생긴 여자들을 봐왔지만 나는 그녀처럼 못생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세기를 대표하는 미녀를 볼 때와 하나 차이 없이, 세기를 대표하는 추녀에게도 남자를 얼어붙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에...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 소설이 영화로 제작됐다 해서 넷플릭스에서 찾아봤다. 확실히 영화는 이런 모든 속마음들을 대사에 넣을 수 없어서 그런지 많이 축약되어 있다. 소설에서 인물의 비틀린 자의식과 혼란이 더 잘 느껴진다. 배우가 그걸 어떤 표정이나 몸짓으로 얼마나 살려내느냐가 그 배우의 역량인 것 같다. 문장으로 파고 들어가는 이런 맛에 소설을 보는건가?

    김연수

  • 그러니 나 다시는 엄마한테 의지하고 싶지 않아. 의지했던 건 아버지만으로 족해. 나... 그냥 뭐든 알아서 하고 싶어. 사람들이 신경을 써줄수록 똥은 불편해. 똥의 입장이란 그런 거야. 내버려두면 나는 알아서 거름이 될 거고, 또 엄마를 계속 좋아할 거야. 밥이나 차려주고 빨래를 해주고... 또 우두커니 앉아 있을 엄마를 보고 싶지 않아. 나를 볼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리게 될 엄마도 싫어.

    엄마 입장에서는 남편도 떠나고 아들도 떠난 셈이 된다. 엄마한테 모든 걸 맡기다 떠나버린 아빠에 대한 아들의 원망도 이해하지만, 엄마한테는 옆에 남아주는 게 더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치만 스스로를 똥이라 하는 아들은 엄마 옆에 남는 것이 효도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을 것도 같다.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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